이재명 정부가 탈(脫) 플라스틱 사회로의 이행 방안으로 '투명페트병 보증금제' 도입을 핵심 과제로 꺼내 들었다. 플라스틱 사용 감축과 고품질 재활용 향상을 동시에 겨냥한 정책이다. 정부는 투명페트병 보증금제가 기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실질적으로 대체 가능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행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이해관계자 조정 문제, 무엇보다 수천억 원 규모의 인프라 구축 비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27일 관가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19일 세종에서 진행한 국정기획위원회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탄소중립 정책 공약 중 투명페트병 보증금제 실현 방안을 보고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국가 차원의 탈 플라스틱 로드맵을 수립하겠다"며 투명페트병에 보증금을 지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투명페트병 보증금제도란 소비자가 투명페트병을 구매할 때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내고, 사용한 페트병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앞서 2018년 당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빈 병 외 투명페트병에 대한 보증금제 확대 도입을 위한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게 시작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환경의 날, 가득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환경의 날인 5일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2025.6.5 xanadu@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원본보기 아이콘현행 투명페트병 처리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근간으로 한다. 이 제도는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해당 폐기물에 대한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현행 전국 공동·단독주택에서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예컨대 아파트 단지 내 투명페트병을 따로 분리 배출하면 재활용 사업자가 이를 수거해 고품질 원료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투명페트병만을 따로 배출하기 때문에 세척 등 재활용 공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배출 전 라벨제거 등 번거로움으로 회수율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보증금 제도는 소비자로부터 플라스틱 회수율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맹학균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보증금 제도는 기존 EPR 제도를 더 잘하기 위한 회수 강화 조치"라며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소비자들이 병을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되고, 회수 대상 병만 골라 고품질로 모을 수 있어 확실히 재활용 품질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에게 '이 병에는 보증금이 들어 있으니 버리지 마시고 회수기에 넣어달라'라고 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는 것"이라며 "회수율과 회수 품질 역시 획기적으로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제도 시행에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다. 우선 전국에 회수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2000~3000명당 회수기 한 대를 설치할 경우 5000억~6000억원의 초기 투자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회수기 설치·운영의 책임 주체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운영 비용을 정부·생산자·재활용업체 중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 정부 예산으로 투입할지 등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수거업체들이 시장에서 배제될 경우 산업적 반발도 불가피할 수 있다. 수거 방식의 변화로 기존 플라스틱 회수를 중점으로 하는 자영업자 등은 산업에서 배제돼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부는 2022년 '일회용 (플라스틱) 컵 보증금제'를 추진하다가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반발로 사실상 무산된 전례도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 점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하고 신중하게 접근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투명페트병 보증금제 외에도 재생 플라스틱 의무사용 확대 등 다각적인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5000t 이상 페트병을 사용하는 식음료 생산자에게는 내년부터 10% 이상 재생 원료 사용이 의무화됐고, 이를 2030년까지 30%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2000년 2억3400만t에서 2019년 4억6000만t으로 두 배 급증했고, 플라스틱 폐기물은 2000년 1억5600만t에서 2019년 3억5300만t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설명했다. 또 유엔환경계획(UNEP)은 이러한 플라스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대 59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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