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불행은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불행이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1월 서울서부지법 습격 사태의 주동 세력은 20대 남성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유독 그들이 눈에 띄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진료실에서 여러 청년들을 만났다.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은 그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분노와 불신, 울분과 박탈감, 외로움, 원한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극우 성향'이로 이어지는지 추적한다.

극우 청년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깊은 좌절과 배신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들은 저마다 불안 속에서 살다가, 결국 좌절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다. 더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자신의 손을 잡아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극우 청소년과 청년들의 기존 사회에 대한 신뢰는 크게 깨져 있는 상태다...그들은 이제 도움이 필요 없으며 기대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한 사회에 대해 원한과 복수심을 갖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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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이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단 시급한 할 일은 청년들의 불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불안은 여러 곳에서 온다. 먼저, 전통적으로 남성의 지위를 보장해주던 요소들이 흔들리고 있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활동 참여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밀려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원래 내 것이었던 이익(권리)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추상적 차원을 넘어 그 불안의 진원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부족한 일자리'과 '피말리는 경쟁'이다. 저성장 시대,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이 와중에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청년들은 '공정'이라는 가치에 예민했다. 그리고 능력주의를 신봉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모든 성공은 내 노력의 정당한 보상이라고 여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소수만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대부분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라는, 스스로 쳐 놓은 그물에 걸린 셈이다.


저자는 원한과 분노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단기적으론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중장기적으론 교육 제도 개선과 사회 전체의 지원을 강조한다. 결국 정치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청년의 극우화는 정치의 부재가 빚어낸 시스템의 오류다. 청년들의 현실적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갈라치기에만 몰두한 결과다. '여성가족부 폐지', '신구 연금 분리'와 같은 정책은 전형적 사례다. 불안과 분노의 표출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이 여성이나 노인, 이민자·소수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도록 방치한 것은 정치의 실패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과도한 경쟁 구조를 완화하며, 사회적 안전망 강화해 나가야 한다. 사회가 나의 땀과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 │김현수 지음│클라우드나인│220쪽│2만원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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