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퇴직연금이 깨어나고 있다. 지난 9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작년 말 퇴직연금 총적립금은 432조원으로 지난 5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비슷한 증가세라면 퇴직연금제도 도입 20주년이 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5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특히 가입자가 책임지고 운용하는 DC(가입자 책임)형과 IRP(개인형 퇴직연금)의 비중이 DB(회사책임)형의 비중을 넘어섰다. 작년 DB형 적립금 증가율은 4%에 그쳤지만 DC형은 17%, IRP는 31%를 기록했다.
신규 도입 기업들은 대부분 DC형을 선택하고, 기존 DB형 기업도 DC형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모자라는 연금을 IRP로 추가 적립하거나 퇴직급여를 IRP에 적립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퇴직연금 시장은 점차 DC형과 IRP 중심의 시장으로 바뀔 것이다. 참고로 미국 퇴직연금 시장에서 차지하는 DC형과 IRP의 비중은 65% 정도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DC형과 IRP 운용 방법이다. 직장인들이 원금손실 위험이 있어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작년 말 DC형 투자상품 비중은 전년 대비 5%포인트 증가한 23%, IRP는 6%포인트 증가한 34%를 차지했다. 미국 80%, 일본 55%와 비교하면 낮지만, 오랫동안 10~20%에 머물던 것이 20~30%대로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작년 원리금 보장형 상품 평균수익률은 4%였지만 투자상품은 10%를 기록했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엔 투자상품 비중을 높여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투자상품 비중만 늘렸다가 원금손실을 본다면 더 큰 낭패를 보게 된다.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면서 직장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퇴직연금에 대해 보다 철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다. 미국의 직장인들은 DC형 퇴직연금을 잘 운용해야 중산층이 되고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돼 있다. 다른 재테크보다 퇴직연금 운용에서 배운 투자지식을 다른 자산 운용에 활용한다. 퇴직연금 백만장자(퇴직연금자산 100만달러 이상)의 꿈을 키우는 직장인도 많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퇴직연금자산 평가액이 100만달러 이상인 고객수가 86만10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체로는 431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중한 퇴직연금 운용에는 소홀한 채 단기재테크에 시간을 쏟는 직장인이 많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대 남성 주식투자자의 연 매매회전율이 6800%에 이른다. 1년에 68번 주식을 사고판다면 일은 언제 할까? 일에서 월급, 보너스, 퇴직금이 나온다. 일은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금융자산이다. 단기재테크 대신 퇴직연금 운용에 집중하고 여기서 얻은 투자지식을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은 장기투자, 분산투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다. 투자상품 운용 성공을 위해서는 시장 리스크와 개별상품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한다. 시장 전체 하락 리스크는 장기투자로, 개별상품 리스크는 우량상품 선별과 분산투자로 대응해야 한다. DC형과 IRP는 장기투자, 분산투자 원칙을 실천하기 가장 적합한 자금이다. 펀드 중심 투자상품으로 10년, 20년, 30년 장기적립식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투자상품 상담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금융회사 도움을 받아 우량 투자상품을 선별하는 것이다. 이번 백서에서 보듯 운용수익률은 금융회사 상담 수준에 크게 좌우된다. 선별한 투자상품을 단기 시황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 분산 투자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이런 노력으로 퇴직연금 백만장자를 꿈꾸는 직장인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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