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정교해지는 美·EU 규제…K배터리 해법은 '공급망 추적성'

25일 한국배터리산업협히 및 삼일PwC
'K배터리, 위기에서 찾는 기회' 세미나

글로벌 통상 규제가 정밀해지는 가운데, K배터리 산업이 생존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EU)의 배터리 규정은 기술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의 지속 가능성과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공급망 추적성, 디지털 배터리 여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규제 대응 역량을 강화하며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삼일PwC 본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제공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삼일PwC 본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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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삼일PwC는 삼일PwC 서울 용산구 본사 아모레홀에서 '최신 미국·EU 통상 정책 및 대응 전략 세미나-K배터리, 위기에서 찾는 기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 발표는 ▲글로벌 전기차(EV)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통상 규제 현황 및 대응 ▲EU 규제 대응 핵심 쟁점, EU 배터리 규정 및 사례 ▲공급망 규제 대응을 위한 추적성 관리 체계 수립 방안 등을 주제로 다양한 분석 정보를 제공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세계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K배터리 산업은 그 과실을 향유하지 못하고 복합 위기에 빠졌다"며 "새 정부가 제시한 초격차 기술 확보 연구개발(R&D) 강화,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도입, 배터리 삼각 벨트 조성 등의 정책 공약이 100대 국정 과제에 반영돼 실행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업계도 빠른 속도로 K배터리의 경쟁력을 회복해 대한민국 경제를 재충전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통상 규제 "K배터리에 유리…수요 위축은 불가피"

세미나는 최근 미국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발표된 정부예산 조정 법안(OBBB) 초안의 배터리 분야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조항의 주요 내용과 전망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됐다. 분석에 따르면 배터리 분야의 AMPC는 당초 하원 법안과 달리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세액 공제 수혜 기간, 제3자 양도, 중국 공급망 규제에 관한 규정이 비즈니스 실제를 반영해 수정됐다.


세액공제 수혜 기간의 경우, 하원 법안은 IRA보다 1년 단축한 2031년 말까지 존속하도록 했으나, 상원 법안 초안은 당초 IRA와 같이 2032년 말까지로 유지됐다. 세액공제의 제3자 양도는 하원 법안에서 2027년 말 이후 폐지됐으나 상원 법안은 원안대로 허용했다.


중국 공급망 규제를 위한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에 대해선 하원 법안과 같이 AMPC에 중국 공급망 규제를 위한 금지외국기관(PFE) 규정을 도입했다. 다만 PFE 지원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아닌 매년 줄여나가도록 함으로써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방식으로 조정됐다.

특히 PFE의 실질적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정량적 기준인 '실질 지원 비용 비율(MACR)'이 새로 도입된 점이 주목된다. MACR은 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양극재, 음극재 등 직접 재료 비용 중 비PFE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이 기준이 도입될 경우, 현지 투자기업은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매년 축소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지만 중국 기업의 미국 수출, 투자 및 기술이전 계약은 더 어렵게 돼 국내 배터리 기업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주현 삼일PwC 파트너는 "아직 법이 통과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기조를 유지했고, 전보다 법 조항을 세밀하게 정리해 불확실성은 다소 해결됐다"며 "당장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안도할 수 있지만,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감축돼 수요 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세미나 모습.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제공

세미나 모습.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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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규제도 높아진다…배터리 '추적성' 강화 시급

이날 세미나에선 EU가 추진 중인 배터리 규정(EUBR),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핵심원자재법(CRMA) 등 환경과 안보를 연계한 통상 규제와 기업의 대응 방안도 제시됐다.


EU는 공급망 전 주기에 걸친 공급망 투명성 확보와 지속가능성 기준 강화를 통해 역내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유럽 시장 진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세미나에선 세계 2위 시장 규모를 가진 EU의 다양한 규제를 다루며 기업들이 선제적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추적성 관리 체계 등 대응 방안이 제시됐다.


EU는 반도체,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 유럽 성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배터리 사용의 핵심 자재 60~100% 가까이 외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EU는 오래전부터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자 여러 규제를 확대해 왔다.


이보화 삼일PwC 파트너는 "EU 규제엔 전체 밸류 차원에서의 재사용·재활용도 녹아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전 생애 주기에 거쳐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의해야 한다"며 "EU는 중요한 산업군에 대해 역내 생산을 높이고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 아래에 규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ESG를 잘 챙기는 건 경쟁력 확보의 차원이 아닌 기본적으로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라며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만 수출 비즈니스에서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장 중요한 요구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이라며 "배터리에 관련된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만 하는 의무 규정이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배터리 여권은 배터리 모델, 제조사, 고유 식별 코드 등의 배터리 정보와 원재료 원산지 이력, 22개 지표를 따르는 ESG 성과를 담고 있다.


이 파트너는 "EU는 CSDDD, EUBR 등이 포함된 옴니버스 패키지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며 "이게 승인될 경우 배터리 규정 중 공급망 실사는 2년 정도 유예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공급망 실사 외에도 탄소 발자국이나 배터리 여권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타임라인이 유지되고 있어 유럽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꼭 알아야 하는 규제"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EU 규제 대응을 위한 방법으로 '공급망 추적성'이 제안됐다. 공급망 추적성은 원료 조달, 가공, 부품생산, 최종재 완성, 소비, 폐기, 재사용·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제품이나 원자재가 이동하는 모든 흐름을 추적하고 그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준걸 PwC 파트너는 "공급망 규제 확대되면서 추적성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유럽 CRMA나 EUBR, 미국의 IRA는 원료공급, 소재가공, 부품제조, 완제품 생산 등 각 사슬마다 적용되는 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상이한 규제 항목과 전체 밸류체인에 미치는 영향을 각각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최 파트너는 "사전에 관리하지 않을 경우 수출이 막히고 기업 평판에도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 1차 협력사를 포함해 전체 협력사에 대한 밸류체인 관리가 사전에 필요하다"며 "한번 체계를 구축할 때 새로운 규제가 생겨도 반영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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