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현주소는 3.2점' '잠재성장률 10년 내 0%로 추락'이라는 냉혹한 평가가 나왔지만 반등의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경제 설문에 응답한 전문가들의 절반 이상은 향후 5년 안에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방향키를 쥔 새 정부가 단기 부양책과 구조개혁이라는 기로 속에서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다. 전문가들은 장기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대전환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7일 아시아경제가 산업 및 경제 연구기관·학계 등 각 분야 전문가 12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8명)는 우리 경제가 5년 내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전망도 암울하지만 경제 반등을 못할 것도 없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에 무게를 둔 것이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여러 가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경쟁력이 높은 부분들이 아직 남아있고, 반등의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부원장도 "현재는 글로벌 경제 전체가 큰 변곡점에 있는 만큼 한국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현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에 성공할 경우'라는 전제를 공통으로 달았다. 반등이 어렵다고 응답한 전문가 4인 역시 "구조개혁 없이는 일시적 반등에 불과하다(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장)" "지금처럼 정쟁과 국민 분열이 지속될 경우 신산업 육성에 집중하기 어렵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유를 댔다. 결국 모든 전문가가 '추세적' 경제 반등을 위한 핵심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강조한 것이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치적 결단을 통한 사회·경제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정책 신뢰가 회복하고 사회적 결속도 강화돼 경제 반등의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내 역점을 둬야 할 성장 키워드(복수응답) 역시 산업구조 전환(7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규제완화(6명), 생산성 향상(3명), 노동개혁(3명)이 뒤를 이었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새 정부는 대전환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임기 중후반 경에 경제체력 강화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관된 정책 추진으로 정부의 신뢰를 확보하면서 민간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정책·제도개선이 이뤄진다면 대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로는 내수 부진 회복을 가장 많이 꼽았다. 내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단기적으로는 재정 확대 등 경기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지만, 그 유혹을 견디고 성장잠재력 확충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경기부양책으로 공급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30년에 걸친 장기 침체를 겪었다. 장기 침체의 길목에 서 있는 한국 경제는 저출생과 고령화, 과도한 정부부채, 생산성 저하 등 과거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가 오랜 기간 회복되지 않은 것은 재정 확대와 금융완화 등 거시정책에만 의존하고 구조조정은 지연된 결과라고 짚었다.
실제로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초기에 금융과 기업 부실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해 침체를 장기화했고, 아베 정부 들어 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을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삼았지만 구체적이지 못했거나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 기간에 기준금리는 0%에 가깝게, 또는 마이너스까지 끌어내리는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직면하는 부작용도 겪었다.
우리 역시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재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손쉬운 방법을 채택한 것은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 역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부채주도 성장을 시도해 버블을 키웠고, 버블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스톱앤드고'식의 재정·통화정책을 운용해 정책 신뢰를 잃었던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우리보다 20여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고령화 정책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침체 초기 보수적 고용 관행과 가족지원 정책이 부족해 여성·고령자·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여성의 경제참여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장기 침체 기간에도 고령사회 대응, 삶의 질 향상 등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사회정책 대응은 꾸준히 지속했던 것을 우리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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