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정통 관료'의 귀환, 책임의 무게를 다시 짊어지다

위기마다 대응나섰던 경제 관료
저성장·고령화 숙제 안고 복귀
구조개혁 이끌어갈 구심점 될까

인터뷰를 위해 김용범 실장을 만난 작년 봄은 정권이 어느덧 중반을 향해가며 경제 정책의 향방을 둘러싼 격론이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그는 이미 공직을 떠나 블록체인 업계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공무원 김용범'이 아닌 '생각하는 경제인'으로,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라는 직함 아래 전과는 다른 결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서는 여전히 절제된 무게감과 관료 특유의 품격이 묻어났다.


서울 수성동 계곡. 정선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한 산책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시절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이 길을 찾곤 했다고 했다. "산책 끝에 정부청사가 보여요. 밖에서 보면 그렇게 작게 느껴져요. 안에 있을 때는 무겁고 크게 느껴지던 일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다시 보곤 했어요." 그의 말에는 통찰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자신을 돌아보고 다듬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사유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2024년 봄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 실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2024년 봄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 실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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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그는 굵직한 위기들을 직접 챙기며 "정책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체득했다. 숫자보다 사람, 구조보다 삶. 그 단순한 진리를 놓치지 않는 태도는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전남 무안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는 스스로를 "가난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고등학생 시절 광주에서 5·18을 직접 겪은 기억은 그의 공직관에 뿌리처럼 자리 잡았다. 사회의 불균형을 단지 인식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체감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와 세대 간 불평등 같은 구조적 문제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고, 국민연금 개혁처럼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에도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직시했다.


그가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돌아왔다. 일부에서는 "또 관료 출신이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가 구조적 둔화에 접어든 지금, 실무를 깊이 이해하고 위기 대응의 최전선을 경험한 인물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단기 부양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손볼 수 있는 정책적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 실장은 그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실제로 손대본 사람이다.


인터뷰 끝에 던진 "공직이 그립지 않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할 만큼 했어요. 그리워하지 않으려 노력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람의 자리는 결국, 그가 가장 필요한 곳으로 다시 불려간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일지 모른다.

앞길은 절대 가볍지 않다.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세대의 불안, 불평등의 고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구조적 위기를 풀어나갈 실질적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단순한 경기 대응책을 넘어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들, 지속 가능 성장에 대한 답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김용범. 그의 이름은 더는 과거의 회고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구조 전환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짊어진 현재의 이름이 됐다. "책임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제 그 책임이 다시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벼랑 앞에서. 그 무게를 감당하고 구조 개혁을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선애 경제금융부장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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