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구조개혁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인구 구조개혁'이다. 초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따른 복합적 인구 위기는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성을 좀먹고 있다. 2012년을 정점으로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감소하자 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도 역시 줄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중점 과제로 여성의 경력 유지를 들면서 이를 가능하게 할 일·생활 균형(일·가정 양립)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성 육아휴직 확대뿐 아니라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돌봄권 지원과 지역 기반 돌봄 네트워크 등 구체적인 안도 언급됐다. 인구 위기의 또 다른 축인 고령화에 대응해선 고령층의 계속 근로에 대한 인식 전환과 방식 논의가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주거와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이 얽힌 인구 문제는 새 방안 발굴보다 빠른 추진이 핵심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예산과 권한을 결합한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2024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가임기(15~49세) 여성 수가 줄어 합계출산율이 개선돼도 구조적인 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저출산 흐름 자체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일터에서의 일·생활 균형 제도 강화를 비롯해 주거와 돌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대부분의 전문가가 여성의 경력 유지, 즉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한 보다 실질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과 함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둔화 압력을 주는 노동 공급 감소 역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휴직 부분에선 여성의 실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뿐 아니라 육아휴직기 경력 인정, 남성 육아휴직 확대 등을 통해 직장 내 문화와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 시기를 늦추는 사회 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결혼 및 출산 연령을 낮추기 위해서는 청년층의 주거, 일자리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 두루 필요하다"며 "취학연령을 낮추거나 총 교육 기간을 줄이고, 군대 기간 활용, 취업 준비 시간 단축 등 청년의 빠른 사회진출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낳을 환경' 못지않게 중요한 게 '기를 환경'이다. 전문가들은 양육 및 교육비 부담 완화에도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봤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과 육아의 병립이 가능하게 하는 육아 환경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며 "지역별로 불균형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하고 저녁때까지 부담 없이 맡길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은 개인 돌봄 계좌 도입, 중소기업 돌봄권 지원, 지역 기반 돌봄 네트워크, 시니어 참여형 돌봄, 통합돌봄 자격증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과도한 경쟁 완화를 통한 삶의 질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은행에선 수도권 집중 완화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2~6개 수준의 지역 거점도시 육성, 대학의 지역별 비례 선발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수도권 집중과 이에 따른 경쟁 환경 완화는 보다 장기적인 시계에서 들여다볼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교통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제한적인 주택 공급보다 수도권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까지 진입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 확충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종합적 인구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구 문제는 주거, 노동,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영역과 얽혀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사업 단위 접근이 아니라 종합적 사회정책으로 확대한 '구조개혁의 패키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산과 권한을 결합한 컨트롤타워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인구 정책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봤다. 이 원장은 "인구 정책을 파격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 가능하게 끌고 나갈 인구 전담 부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적어도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인구 정책 기획 기능과 예산을 모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있는 집중적 정책을 간섭받지 않고 끌고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고속 고령화는 인구 위기의 또 다른 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18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지 7년 만에 초고령사회의 문을 열었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0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7.5%로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46.0%)을 넘어서면서 노년 부양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생산연령인구 반등을 위한 인구 구조 개선 노력과 함께 인력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봤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층의 계속 근로다. 한은은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를 통해 고령층의 계속 근로 방안으로 정년 연장보다 '퇴직 후 재고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65세까지 계속 근로가 가능할 경우 향후 10년간 성장률을 0.9~1.4%포인트, 연 0.1%포인트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추정하면서, 기업에 점진적으로 재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령층의 계속 근로를 위한 인식 전환 역시 필요하다. 김경진 세계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 가능 연령이 올라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재교육 및 재취업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새 정부가 개선을 예고한 주택연금 역시 민간 역모기지까지 확대해 추진해야 한다고 봤다. 주택연금은 소유 주택 담보로 제공하고 해당 주택에 계속 살면서 평생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현재 55세 이상, 공시가격 12억원 이하 주택소유자를 대상으로 하며 주택금융공사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 주택연금을 활성화하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층의 3분의 1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주택연금 가입률은 지난해 10월 기준 가입요건을 충족한 가구의 1.89%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주택가격 변동분 반영, 주택 상속 요건 완화, 세제 혜택 확대 등을 통해 주택연금을 활성화해 노인 빈곤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시중은행의 역모기지 역시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김 부원장은 "고령층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연금 구조 개혁뿐 아니라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 재교육, 의료서비스 확대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고령층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스타트업 등 다양한 서비스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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