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중장기 교통 정책을 인구구조 변화와 연계해 수립하려던 정부 계획은 무산됐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국토교통 인구대응' 전략의 일환인데, 교통을 독립된 최상위 광역 정책이 아닌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미래 정책수요 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려던 시도였다.
계엄사태와 탄핵정국으로 지난 정부가 정책 수립 초기부터 동력을 잃은 데다 정권 교체로 백지화에 몰린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동에만 초점을 맞췄던 기존 정책은 포화점에 다다라 국토 관리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자율주행이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확대와 같은 개별 사안에만 밑그림을 그려놨다. 정책 수립과 실행에 막대한 예산은 물론 긴 시간이 소요되는 교통 분야 특성상, 미래세대를 위한 논의는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7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에서 출범한 '국토교통 인구대응 협의체'는 반년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초유의 인구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직후 범정부 차원에서 만든 조직으로 유관기관들도 대거 참여해 사회문제들과 연계한 새로운 방식의 교통 정책을 다뤄볼 계획이었으나 연구보고서 1개만 내놓고 사실상 해산했다"고 전했다.
시작은 2024년 6월19일, 윤 전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다.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며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까지 언급했던 때다.
앞선 정부들이 추진했던 정책들의 재탕 종합 수준에 불과했지만 의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정부는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국토교통 인구대응 협의체'를 만들어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와 인구구조 불균형이 지역생활패턴, 주거형태, 교통수요, 산업경쟁력 등 국토교통 핵심 분야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광역 교통 확충에서 인구구조 변화가 정책 수립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기반시설(SOC) 연계 사업을 제외하더라도 정부가 교통 정책에 쏟는 예산만 연간 평균 10조원으로, 정권이 교체돼도 '이동 편의 확충'에 맞춘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국토교통 인구대응 협의체'는 달랐다. '이동'에서 벗어난 정책 간 연계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과 청년들로 구성된 2030자문단이 참여했다. 관련 전문가 44명이 참여한 매머드급 정부 협력 기구의 탄생이다. 협의체는 같은 해 7월 1차 회의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연구과제를 중심으로 자문회의를 진행했다. 관련 연구용역에도 나섰다. 핵심은 '인구 트렌드에 맞춘 정책 수요'. 새로운 인구구조를 반영한 교통 정책을 수립해 정책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투자 예산까지 줄여보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계엄사태와 탄핵정국을 거치며 협의체는 뒷배를 잃었다. 내부적으로 공식 연구는 올해 1월에 종료됐고 용역이 끝난 연구과제들도 비공개로 묻힐 위기에 놓였다. 협의체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대규모 신도시 지정과 같은 도시개발에 따라 연계했던 교통 정책과 달리 (협의체) 내부에서는 도시를 변화시키는 변수들을 찾아내 교통 수요에 반영하려 했다"며 "정치권 상황과는 별개로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성을 갖고 논의가 이어졌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김자인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역대 정부에서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의 협의체는 없었지만 저출생과 고령화와 같은 사회 통합적인 측면에서의 고민이 새 정부에서도 다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국가 교통 행정의 대전환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교통 수요층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인구가 가장 밀집한 서울만 하더라도 2016년 인구수 1000만명 선이 무너진 뒤 매년 감소, 지난해에는 933만명까지 내려앉았다. 전반적인 인구감소 외 집값급등이라는 변수로 서울시민이 경기도와 인천으로 밀려난 점도 눈에 띈다. 다만 경기권 인구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수도권 전체 인구수는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인구수 감소와 함께 고령화도 가속화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세 이하 서울시민은 119만7536명으로, 70세 이상 서울시민(121만2605명)보다도 적다. 서울시에 청소년·어린이보다 70세 이상 어르신이 더 많은 셈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기준 인구 19.8%(184만명)가 65세를 넘어서면서 7월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비율이 3명 중 1명(31.6%)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수도권 교통 정책은 '이동'에만 초점을 맞춰 수립됐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 수도권 교통 정책의 핵심을 'GTX' 확장에 맞췄다. GTX-A 노선 개통을 시작으로 GTX-D·E·F 노선 추진에 집중했고 지방에도 광역급행철도(x-TX)를 도입하는 방안을 내놨다.
수요를 반영하지 않은 정책은 부작용을 낳았다. '수도권 출퇴근 교통난 완화'라는 기대와 달리 국토 불균형이 우려됐다. 서울로의 통근 가능거리가 늘어나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이 더욱 가속화한다는 논리다.
교통편이 신설되는 지역을 따라 주택 공급이 늘어나고 수요가 몰리며 낙후지역이 더 열악해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경기권의 부동산 양극화가 대표적이다. 올 초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데이터를 살펴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 빈집수는 153만4000가구로, 경기도는 이중 18.6%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경기도 내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지역은 평택(11.2%)으로 이어 ▲화성(8.1%) ▲부천(6.3%) ▲수원(6.1%) ▲남양주(5%) 등으로 일부는 교통망 확장이 논의됐던 지역이었다.
여기에 저출생과 고령화까지 더해지며 새 교통망이 기존 교통체제의 이용률을 떨어뜨리는 '제로섬 게임'으로 확산됐다. 이미 운행 중인 지하철과 버스노선과의 중복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는 물론 수도권 일부 교통체계가 적자 경영으로 국민 세금 지원이 필요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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