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내각 인선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장관을 교체해 온 관례를 깨고 유임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관가에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평판과 함께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복잡한 농정 현안을 고려한 기능적 인사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송 장관의 유임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관가와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꼽는 건 그의 '태도'다. 24일 정부 한 관계자는 "정책을 놓고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송 장관은 덮어놓고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농정은 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분야지만, 그는 사안마다 찬반을 단정 짓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논란이 컸던 양곡관리법 개정 시도 당시에도, 송 장관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시장 기능 훼손 등의 우려를 조목조목 짚고, 대통령에게 재의 요구를 건의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수급 조절형 수매제 등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료사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실무형 태도가 정책 조율 가능성을 높였고, 새 정부의 신뢰를 얻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또 다른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도 "송 장관은 어떤 사안이든 '무조건 반대'부터 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말이 통하고, 조율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내부적으로도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유임 결정을 내리게 된 직접적 계기는 최근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송 장관은 농산물 수급, 농촌 재해 대응, 식량안보 등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고, 이 대통령이 "굉장히 실력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송 장관의 유임은 단순한 인사 결정을 넘어 이재명 정부 인사 기조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정권 교체기에는 전임 정부 장관이 교체되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에는 '진영보다 실력'이라는 인사 원칙이 실제로 적용됐다.
특히 농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를 그대로 기용한 것은 국정 운영 전반에서 갈등을 줄이려는 신호로도 읽힌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과거 정부 인사라는 점보다 새 정부 방향에 얼마나 동의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봤다"며 "진영이 아닌 실용으로 평가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송 장관은 지난해 말 '비상계엄 검토' 문건 논란 당시 해당 국무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계엄 관련 회의였다는 사실을 몰랐고, 당시에는 안건도 설명받지 못한 채 참석했다"며 "그 자리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국민께 송구하다"고 즉각 사과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장관 중 유일하게 입장을 분명히 밝힌 사람"이라며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반성을 통해 신뢰를 회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리더십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위기 대응력'은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송 장관의 빠른 사과와 이후 국무회의에서의 적극적 역할은 이재명 정부의 신뢰 확보 전략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유임이 곧 면죄부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험대라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당장 양곡관리법의 개정 방향을 새 정부 기조에 맞춰 재조율하는 일이 남아 있다. 쌀 시장 안정과 식량안보 확보라는 목표 아래 시장 기능과 농민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송 장관이 제시했던 대안들이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고령화·기후위기·농촌 공동화 등 구조 전환 과제는 여전히 무겁고, 청년농 유입, 디지털 농정 개혁, 지역 순환경제 육성 등 주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기에 유임 발표 직후부터 비판 성명을 낸 농민단체들과 일부 진보정당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단순한 메시지보다 실질적인 정책 성과와 소통을 통해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국무회의 발언보다 현장에서 보여주는 결과가 중요하다. 농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유임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전 정권에서 넘어온 인사인 만큼, 성과로 증명하지 않으면 곧바로 정치적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말이 통하는 장관이라는 평가가 지속되려면 결과로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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