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에서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20대와 30대인 피해자들이 각각 어깨와 발목을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피해자들이 사는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고, 문을 연 피해자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과 피해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일주일 전에는 서울 금천구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과거에도 유사한 범행으로 징역을 살고 출소한 남성의 범행은 여자친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멈춰졌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시흥의 한 편의점에서 남성이 여사장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
시행 2개월이 넘은 '공공장소 흉기 소지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다. 2023년 서울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은 사회 전반에 깊은 충격을 안겼고, 이후 전국에서 유사 사건이 잇따르며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됐다. 이에 정부는 '공공장소 흉기 소지죄'를 신설했다. 공공장소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흉기를 소지해 불안감을 조성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 형법이나 경범죄처벌법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웠던 '잠재적 위협' 자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제주에서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행사에 흉기를 들고 나타난 40대 남성이 체포됐고, 부산에서도 흉기를 소지한 채 공공장소를 배회하거나 소동을 부린 남성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흉기 난동 전 단계에서 조기 제압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이 법은 일정 부분 예방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소지죄'만으로는 흉기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현실도 드러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사건들이 그 상징적 사례다. 정당한 사유에 대한 해석부터 모호하다. 생업 도구를 소지하고 이동하던 직업군이나 캠핑·낚시 등 취미 활동 중 장비를 휴대한 경우에도 경찰 판단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단속의 실효성 문제도 있다. 흉기를 소지하고 평온하게 이동할 경우 이를 사전에 탐지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도 체포 사례 상당수가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수동적인 대응은 범죄의 돌발성과 속도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당수 흉기 난동은 정신질환, 사회적 고립 등 구조적 배경을 동반한다. 단순히 흉기의 '유무'만으로는 이런 복합적 범죄 동기를 설명하거나 방지할 수 없다.
결국 보다 정교한 예방 중심의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정신건강 조기 개입 시스템 강화가 시급하다. 범죄 이력은 없지만, 이상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인물에 대해 경찰, 보건기관, 지자체가 협력해 대응할 수 있는 통합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능형 CCTV와 AI 기반 행동 분석 기술의 도입도 병행돼야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배회,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 등을 실시간 감지해 경보를 발령하는 기술은 이미 일부 국가에서 시범 적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영상분석 전문기업이 흉기를 든 사람이 나타날 경우 이를 추적해 위험 상황을 알려주는 기술을 개발해 공개한 바 있다.
'공공장소 흉기 소지죄'는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속보다 감지이고, 처벌보다 개입이다. 안전은 법률 조항 하나로 보장되지 않는다. 법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예방의 정교함과 사회의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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