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한모씨(35)는 3년째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불면증과의 싸움을 위해 침구류 청소도 해보고, 잠들기 전 차 마시기와 가벼운 운동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최근엔 잠들기 전에 휴대전화를 보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휴대전화 감옥'을 구매했다. 계속 휴대전화를 보게 되니 아예 침대에 눕기 전 전화기를 감옥에 넣어놓고, 원천 봉쇄한 것이다.
서울에서 장교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29)도 1년째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을 겪고 있다. 그는 숙면에 좋다는 베개와 이불도 구입해보고, 수면을 도와주는 사탕을 먹거나 수면 유도 스프레이를 뿌리는 방식으로 불면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해도 잠이 안 올 때는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이마저도 소용이 없어 밤을 새우고 출근한 적도 있다.
스트레스와 업무 피로 등으로 잠 못드는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슬리포노믹스(Sleep+Economics)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슬리포노믹스란 잠과 경제학의 합성어로 수면과 관련한 시장 전반을 의미하는 용어다.
24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서치앤드마켓츠에 따르면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 규모는 4년전 이미 3조원을 돌파했다. 이 기관은 5년 후 세계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153조원에 달한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수면연구학회가 발표한 '2024 한국인 수면실태 보고서'를 보면 수면 장애나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0년 27만8000명에서 2024년 67만8000명으로 140%나 증가했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5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8%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잠에 있어서 한국은 선진국 수준에 한참을 못미치는 것이다.
수면 부족과 수면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면을 돕는 침대, 베개, 각종 보조제 등 각종 수면 촉진 제품들이 등장했다. 슬립테크도 점점 발전하고 있는데, 스마트워치·링으로 생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수면을 도와주는 음악도 있다.
슬리포노믹스 시장 성장과 함께 일부 병원에선 환자에게 숙면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처방하기도 한다. 일명 불면증 치료 앱이다. 불면 환자들은 수면 유도 프로그램을 장착한 앱을 깔고 난 뒤 프로그램대로 이행하면 수면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작년부터 디지털 치료제라고 해서 수면 습관을 개선하는 앱을 처방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에 따라 열심히 사용해 효과를 본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면증과 수면장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약물 치료보다 주변 환경과 생활 습관을 바꿔보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이아라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면증 치료에선 약물 치료보다 수면 위생 교육이 우선"이라며 "불면을 일으키는 나쁜 습관이나 수면 환경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도 안 될 때 개개인의 수면 패턴에 따라 약물 치료는 맞춰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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