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순종은 3년 동안 아침마다 아버지의 능으로 전화를 걸었다. 순종은 일제의 감시와 강요로 부친의 삼년상을 치를 수 없었다. 이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안장된 홍릉에 전화를 걸어 능지기가 수화기를 봉분 앞에 대면 슬프게 곡을 했다.
순종이 전화로나마 삼년상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1896년 최초로 전화기가 설치된 덕분이다.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이지만, 전화기 설치는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을 통해 14년 후에나 이뤄졌다. 에릭슨은 당시 조선에 전화기 12대를 설치했다.
기계공인 라르스 마누스 에릭슨이 만든 전신 장비 수리 공장이 에릭슨의 시초(1876년)다. 1878년 에릭슨은 전화 장비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으며 1879년 스웨덴 가정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18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해외 사업을 전개하면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에릭슨이 진출한 국가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180여개국에 이른다.
100여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거듭나면서 국내 이동통신사는 우수 고객사가 됐다. 에릭슨은 2010년 LG전자와 합작해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가 올해부터는 에릭슨코리아로 상호를 바꾸고 국내 입지 강화에 나섰다.
4월 부임한 시벨 톰바즈 에릭슨 코리아 대표이사는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5G를 넘어 6G를 향해 가는 한국 이동통신사들의 여정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협력사의 고충을 해결하면서 에릭슨도 성장할 수 있다고 톰바즈 대표는 말한다. 에릭슨은 2018년 세계 최초로 평창올림픽에서 삼성전자·노키아·퀄컴 등과 손잡고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였다. 톰바즈 대표는 "앞으로 더 나아가 6G도 도입이 될 때 그 여정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낌없이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에릭슨의 강점은 협력사는 물론 경쟁사들과도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구가 1000만명에 불과한 스웨덴에서 태동한 기업이 세계 1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에릭슨은 1990년대 블루투스를 만들 때 경쟁기업과 함께 표준화를 이끌었다. 블루투스 관련 아이디어는 에릭슨에서 먼저 나왔지만, 통신장비업체 혼자서 블루투스를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블루투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에릭슨은 초기 개발 이후 경쟁사와 연합체를 결성했다. 에릭슨을 포함해 인텔·노키아·IBM·도시바 등이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여러 기업과 함께하면서 디바이스의 호환성을 넓혀 나갔고 블루투스는 개방형 표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매출액의 20%(약 5조원가량)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관행은 에릭슨이 성장하는 또 다른 비결 중 하나다. 한국에도 설치된 에릭슨 R&D센터는 6G 선행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톰바즈 대표는 "한국이 ICT 강국이다 보니 모바일 기술이라던가 새로운 솔루션에 있어서 도입이 제일 빠르다"면서 한국에서의 6G 기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에릭슨은 여성 임원이 50%에 달할 정도로 성평등한 문화도 발달했다. 성별뿐만 아니라 나이,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포용적인 기업 문화를 지향한다. 다만, 터키에서 전자과학을 전공한 톰바즈 대표는 자신이 대학생 시절 전체 학생 100명 중 여학생은 6명에 불과했다고 기억했다.
여성 인력들이 ICT 부문에 보다 더 많이 입문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링에 대한 선입견을 깨면 ICT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톰바즈 대표는 "전공 학생 중 여성 수가 매우 적어서 불균형이 이뤄지면 결국 취업도 성비 불균형을 피할 수 없다"면서 "학생들이 어린 나이일 때 다양한 교육, 강연 등 프로그램을 통해 엔지니어 부문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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