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⑤“산업 뼈대 中企 일자리, 유연·자율화로 지켜야"

기업 87.0% "근로시간 예외 규정 필요"
전문가, 노사의 자율적 합의와 선택권 강조

편집자주선진적 근로여건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주 52시간제 등의 근로규제가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짓누르는 일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특히 구조화된 경기침체로 경영난과 인력수급의 애로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문제인식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임금의 감소 없는 주 4.5일제'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경제와 산업의 주축인 동시에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계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작고 영세한 기업일수록 더 고통받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의 덫을 뛰어넘어 유연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근로문화를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아진다. 아시아경제가 중소기업 현장의 실상을 바탕으로 그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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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⑤"산업의 뼈대인 中企 일자리, 유연·자율화로 지켜야"


주 52시간제부터 이재명 정부 들어서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는 주 4.5일제에 이르기까지 근로시간 규제의 압력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획일적 접근에서 서둘러 탈피해 현장의 원리를 제도에 최대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행 주 52시간제의 예외 규정 도입 등 근로시간제를 유연화하는 조처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 건 획일적인 규제가 낳은 부작용의 메아리라고 할 수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협회가 최근 실시한 '벤처기업 주 52시간제 운영 실태 및 애로조사' 결과 근로시간 예외 규정에 대해 전체 기업의 87.0%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60.7%는 '특정 프로젝트 진행 시 필요하다'고 했고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응답한 기업도 26.3%에 달했다. 근로시간 예외 규정 도입 시 활용 계획에 대해서도 57.7%는 일부 조건을 전제로 활용하겠다고 했고 24.7%는 즉시 활용하겠다고 해 총 82.4%가 도입을 바라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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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규정,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 = 이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일례로 한 국내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은 최근 일본·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주 52시간제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진출 국가별 시차, 현지 파트너사와의 실시간 협업 시스템, 각국의 마감 일정 등이 국내 규정과 충돌한 것이다.


이 회사 기술 분야 담당자는 “해외 비즈니스의 경우 시차 문제 등으로 한국에서만 일할 때보다 1.5배 이상 근로시간이 더 든다”며 “AI 분야는 경쟁사들이 다 해외 기업들인데, 그 기업들은 주 52시간제 같은 규제가 없어 성과를 올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AI 이니셔티브가 확실한 나라들에서도 이렇게 근무를 하는데 한국 기업의 경우 52시간으로 한정되면 성장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벤처스타트업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1분 1초를 다투는 개발 경쟁을 벌이는데 주 52시간제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 과도한 규제”라며 "이같은 규제의 족쇄에서 기업들의 손발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주 단위로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월·분기·연 단위 등 일정 주기 내에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근로시간 총량제'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벤처기업협회의 조사에서 근로시간 총량제가 도입될 경우 활용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곳은 전체의 68.4%였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70.3%로 서비스업(64.7%)에 비해 수요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활용할 경우의 전체 응답 기업의 대략 절반인 49.2%가 주요 연구개발(R&D)이나 프로젝트 마감 등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어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노사의 자율적 합의와 선택권 중요 = 주 52시간제의 대안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이 아울러 강조하는 것은 노사의 자율적 합의와 선택권이다. 과거처럼 강제 장시간 근로가 발생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벗어났다는 판단에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제 근로를 요구하는 기업이 있다면 시장에서 먼저 외면할 것"이라며 "지금의 일률 적용에선 노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데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향성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소기업 현장의 특성에 맞게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방향이 맞아도, 800만 개가 넘는 중소기업 현장의 복잡하고 다양한 특수성, 선진국 대비 영세성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제 중소기업 현장에서 활용이 가능한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주 4.5일제 등은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고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어차피 보편화의 효과도 없을 것"이라면서 "근로시간은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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