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유연화로 中企 살리자]④엎친데 덮칠 주4.5일제, 大-中企 격차만 키울 수도

이재명 대통령, 임금감소 없는 4.5일제 공약
근로시간 감소 시 생산성 증가량 제한적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 커질 것이란 우려
OECD 평균 이하 목표지만…"본질 해결 안돼"

편집자주선진적 근로여건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주 52시간제 등의 근로규제가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짓누르는 일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특히 구조화된 경기침체로 경영난과 인력수급의 애로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문제인식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임금의 감소 없는 주 4.5일제'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경제와 산업의 주축인 동시에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계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작고 영세한 기업일수록 더 고통받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의 덫을 뛰어넘어 유연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근로문화를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아진다. 아시아경제가 중소기업 현장의 실상을 바탕으로 그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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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의 획일성·경직성에 따른 파열음과 부작용이 중소기업계 곳곳에서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주 4.5일제 추진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하는 등 도입 작업에 속도를 붙이면서 우려가 배가되고 있다.

주 4.5일제는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노동 분야 공약으로, 주 40시간인 현행 법정 근로 시간을 주 36시간, 주 4.5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주 32시간(주 4일제)으로 가겠다는 목표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임금 감소 없는' 4.5일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 등의 여파에 특히 취약한 중소기업계는 일제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제도가 논란 끝에 법제화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 혜택은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돌아갈 것이라는 문제의식도 상존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거리에서 한 노동자가 잠시 휴식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거리에서 한 노동자가 잠시 휴식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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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5일제로 기업이 져야 할 부담 = 주 4.5일제에 따라 주당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단축할 경우 근로시간이 10% 줄게 되는데 그 만큼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장 생산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산업계, 특히 생산 및 고용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는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과거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약 9.1% 줄였을 때 노동생산성은 1.5% 오르는 데 그쳤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이 이로 인한 기업의 손실을 상쇄하지 못하는 셈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시간당 생산성이 떨어지는 원인을 긴 근무시간에서 찾는 이들이 있는데, 근무시간을 줄인다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며 "근로자들에게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현재는 그 유인이 부족하다. 성과에 따른 수당이나 급여를 차별화하는 전략이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감소하는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업은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이를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게 되면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고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제조 중소기업 대표는 "인력이 부족하면 발주량을 제때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미숙련 직원이 작업하면서 불량률이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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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공공기관과 中企 격차 심화 = 주 4.5일제에 대해 중소기업계가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건 자칫 이 제도로 인해 대기업·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들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환경 격차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 기준 전체 사업장의 약 84.7%, 전체 근로자의 36.3%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주 52시간제, 연차휴가, 유급휴일 등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 4.5일제에 대한 논의에서 아예 소외돼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중소기업 사업장마저 주 52시간제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주 52시간제의 혜택을 보고 편하게 일찍 집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대기업 노동자,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3%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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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업계도 상황은 같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웨이플의 이인규 대표는 "주 4.5일제나 4일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백업 인력이 필요해 이중으로 인건비 부담이 생긴다"며 "결국 인력 여유가 있는 대기업이나 잘 나가는 기업만 실효를 보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주 4.5일제는 여력이 되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일반 중소기업은 대부분이 수혜를 보기 어려운 만큼 상생 관점에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OECD 회원국 중 장시간 일한다는 오명 = 다시 주 4.5일제 논의의 출발로 돌아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 감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2023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 1742시간보다 130시간 길다. 이 대통령이 주 4.5일제를 공약한 것도 우리나라가 장시간 근로 국가라는 이 OECD의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주 4.5일제 도입과 확산 등을 통해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줄이겠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기업의 입장은 장시간 노동하는 자영업자와 단시간 근로자의 영향을 제외하고 전일제 근로자만 놓고 비교하면 우리나라와 OECD 회원국 간 연간 근로시간 격차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것이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우리나라는 단시간 근로자 비중이 유럽보다 낮고, 자영업자 비중은 높아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것"이라며 "장시간 노동 공화국이라는 이미지는 과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근로시간 평균이 문제라면 단시간 근로자 비중을 늘려 통계를 낮추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이는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근로시간 유연화 논의는 통계 수치보다 실질적 작업 가능성과 제도 적합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 전문위원도 "OECD 국가에서 나타나는 근로시간 평균은 장기 휴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우리의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휴가 활성화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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