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가 미국의 본토 공습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중동발 복합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유, 해운, 가전 업계는 물론 항공·자동차 업계까지 유가 급등과 공급망 혼란에 따른 충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물류비와 운송 지연, 제품 원가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제기된다.
23일 오전 기준 글로벌 선박 위치 추적 서비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으려는 선박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35%, LNG 소비량의 약 33%가 통과하는 전략 요충지다. 한국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약 67%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있다.
정유 업계는 원유 수입로 봉쇄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유조선 운항 차질은 없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래가격이 요동치고 있다"며 "봉쇄가 현실화하면 제품 원가와 해상 운임이 동시에 급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사들은 미국산 원유 도입 확대 등 공급처 다변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운 업계도 긴장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모두 우회 항로 확보가 필요해지면서 운송 지연과 운임 상승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홍해 사태 당시처럼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면 물류비가 크게 늘어난다. 지난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홍해 리스크 여파로 전년 대비 149% 급등하기도 했다. 벌크선은 정기편이 아니므로 회피가 가능하지만, 우회 시 시간 지연과 선복 부족으로 운임 상승이 우려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운 업계는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HMM 관계자는 "해협 봉쇄에 대비해 대체 항만 하역 후 육상 운송 방안 등을 유동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하면서 중동 정세가 악화 기로에 서며 유가 상승이 우려되고 있는 23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 광장에서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해상운임이 오르면 국내 수출기업 부담은 커진다. 중동과 유럽 수출 물량 비중이 적잖은 삼성전자 , LG전자 등은 현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시적인 대응 조치는 없지만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며 "홍해 사태처럼 대체 항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란 내 공장이 없고 수출 비중도 미미해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이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만큼 미·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 업계 역시 중동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고 있다. 대한항공은 홍해 사태 이후 텔아비브 노선 운항을 중단한 상태로, 현재는 두바이 노선만 유지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유가 변동성을 중심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다. 유가 급등은 전기료와 연료비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과 환율 불안을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향방은 이란의 추가 보복 수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 전략, 미국 국무부의 대응 등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본토를 직접적으로 공격받은 전례는 없었다"며 "이번엔 실제 봉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의 대응 매뉴얼 가동이 현실화할 수 있는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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