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가 유통 시장이 일본·중국 기업들의 '새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속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찾는 소비자가 증가한 가운데 연 매출 4조원에 육박한 아성다이소의 성공이 이들의 진출에 불을 지폈다. 다만 업계에선 "국내 유통 강자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단순 가격 경쟁만으로는 안착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23일 특허청 지식재산정보 검색서비스에 따르면 일본 다이소 모회사 다이소 인더스트리즈는 지난 4월15일 쓰리피(THREEPPY)' 상표를 국내에 등록했다. 쓰리피는 2018년 일본 다이소가 선보인 '300엔(약 2820원) 숍'으로, 20~40대 여성을 겨냥한 생활잡화 브랜드다. 일본 다이소가 '100엔 숍'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것과 달리 쓰리피는 인테리어 소품·문구·화장품 등 잡화를 주로 판매한다.
일본 다이소는 이미 2019년 'DAISO' 상표로 국내 등록을 시도했지만 기존 사업자인 아성다이소와 충돌로 한 차례 거절당한 바 있다. 이번엔 브랜드명을 바꿔 6년 만에 우회 진출을 시도한 셈이다.
중국 유통 브랜드들의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요요소(YOYOSO)는 국내 입점을 준비 중이다. 현재 전 세계 50여개국에 3000여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다. 생활용품·화장품·자체브랜드(PB) 상품 등을 앞세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과거 한 차례 철수했던 '미니소(MINISO)'도 다시 돌아왔다. 2016년 첫 진출 후 30여개의 매장을 출점했지만 '다이소 모방'이라는 논란에 2021년 철수했다. 미니소는 지난해부터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앞세워 대학로·홍대·강남역 등 3곳에 매장을 열었다.
이들 기업이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건 자국 내 소비 정체와 수출 환경 악화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화와 실질임금 정체로 내수가 위축됐다. 중국은 미·중 갈등으로 미국 수출에 제약이 생기면서 한국을 전략 시장으로 삼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 소비시장은 온라인 소비력과 디지털 적응도가 높고, 소비자의 눈높이도 높아 브랜드 테스트베드로 최적"이라며 "다이소의 성공이 해외 브랜드에 일종의 '진입 신호'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라이프스타일 잡화 시장은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상황이다. 대표 플랫폼인 텐바이텐은 2023년 매출이 324억원에서 지난해 168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자본잠식 상태다. 이 틈을 타 무신사의 자회사 29CM는 지난 20일 '이구홈성수'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영역 확장에 나섰다. 일본 다이소가 '쓰리피' 브랜드로 한국 시장에 재도전하는 것도 이 시장 공략을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시장에선 일본·중국 유통 브랜드들이 다이소 등 기존 강자를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성다이소는 전국에 1500여개 매장을 보유한 '초저가 유통 강자'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초저가 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인지도와 접근성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아성다이소는 매출 3조9689억원, 영업이익 3711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4.7%, 영업이익은 41.8% 성장했다. 가격과 접근성 모두에서 경쟁사들이 넘기 어려운 벽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가 유통시장은 가격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비자와의 접점인 '매장 접근성'이 핵심"이라며 "외국 기업은 물류 인프라나 제조라인 없이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유통에서도 중국계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중국 e커머스) 업체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며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실제 최근 2년 새 이들의 월간이용자수(MAU)는 11번가, G마켓 등 기존 강자를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판 쿠팡'으로 불리는 징둥닷컴도 지난 4월 인천과 이천에 물류센터를 설립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한국 소비자들이 정치적 요소보다 실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과거처럼 반일·반중 정서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긴 어려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가격만으로는 승부하기 어려운 시장이 한국"이라며 "돈키호테처럼 철수한 전례도 있는 만큼 제품 품질과 소비자 신뢰 확보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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