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을 전격 공습하며 중동 전쟁에 참전했다. 미국은 이번 타격이 이란 정권이 아닌 핵 프로그램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협상의 문을 열어뒀지만, 보복을 선언한 이란은 중동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며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미국이 '자살 행위'라 경고한 해협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국제유가 폭등과 함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밤 이란 핵시설을 기습 타격한 뒤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의 핵농축 핵심 시설은 완전히, 철저히 파괴됐다"며 "이란이 평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공격은 더욱 강력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번 작전을 '미드나잇 해머(한밤중의 망치)'로 명명하고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의 주요 핵시설 3곳을 공습했다. 이는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 이후 8일 만에 미국이 참전한 것으로, 미국이 이란 본토 직접 공습은 처음이다. 특히 미군은 스텔스 B-2 폭격기를 이용해 벙커버스터를 실전에 처음 투입했다.
미국은 이란의 보복은 최악의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이번 공습의 목적은 이란 정권 교체가 아닌 핵 위협 억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외교 채널을 통한 협상 가능성도 열어뒀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의 핵 야망은 무너졌다"며 "핵농축 능력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공습은 정권 교체와는 무관하고, 우리는 이란에 여러 채널을 통해 공식·비공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도 "우리가 원하는 건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정권 교체가 목적이 아니란 점을 재차 못박았다. JD 밴스 미 부통령 역시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란 핵 프로그램과 싸우고 있다"이라며 지상군 파병이나 정권 교체는 바라지 않고, 핵무기 없는 이란과의 평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협상의 문을 열어둔 가운데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란의 보복 대응 수위에 집중되고 있다.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한 공격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세를 강화할 경우 이번 무력 충돌은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 특히 이란은 미국의 공습에 대응해 선박 공격이나 기뢰 설치 등을 통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란 초강경 카드를 검토 중이다.
이날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식 의결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에스마일 쿠사리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장은 "최종 결정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결단만은 남겨둔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지역의 핵심 원유 수송로로, 전 세계 하루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이 곳을 지난다. 이란은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 당시 유조선 공격과 기뢰 설치 등으로 해협 통행을 제한한 적은 있지만, 전면 봉쇄까지 간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과의 충돌에 이어 미국이 이란 본토를 직접 공습한 현 상황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란이 실제 봉쇄를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글로벌 원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JP모건, 옥스포드 이코노믹스 등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현재 70달러대 중반인 유가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중동 갈등 악화와 원유 공급 불안에 따른 글로벌 증시 충격이 확산될 경우, 미국이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 고위 당국자들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계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루비오 장관과 밴스 부통령은 이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자살 행위"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루비오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외교적 개입을 촉구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향방은 이란의 대응 수위와 미국이 추가 군사 행동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이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중동 정세는 돌이킬 수 없는 충돌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으로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대외 개입을 자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습으로 중동 전쟁에 직접 발을 담갔다. 이란이 강경하게 맞서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개입을 지속하기도 물러서기도 어려운 '전쟁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여론 향배가 향후 중동 전쟁 상황 전개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마가(MAGA)' 진영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은 "미국 국민 대다수는 이 모든 일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경우, 미국 내 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미 국부무에서 중동 협상 업무를 담당했던 아론 데이비드 밀러 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이란이 보복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꽤 있지만 전쟁이 확대되거나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인이 전사하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여론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