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관리법 위반, 강제추행 혐의로 체포합니다"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거리에서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한 외국인 남성이 여성을 추행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최성욱 순경(24)이 남성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남성은 이내 자리를 박차고 달아났다. 약 100m의 추격전 끝에 최 순경은 남성을 붙잡아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최 순경이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기 전 실습생 신분으로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에서 업무를 배울 때 있었던 일이다.
아시아경제와 만난 최 순경은 자신을 '현장 체질'이라고 소개했다. 주취자부터 길 잃은 아이까지 현장은 혼란의 연속이지만, 두려워하기보다는 부딪치며 배웠던 최 순경이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등 활동적인 것이 적성에 맞다"며 "게다가 경찰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일을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홍익지구대로 정식 배치받아 생활하면서도 그의 두발은 쉴 틈이 없었다. 양화대교에서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시민을 구해낸 적도 있다. 당시 실종 신고를 받은 최 순경은 위치 추적 결과 실종자가 양화대교 쪽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최 순경은 부지런히 뛰어다녀 실종자를 찾아내 보호자에게 인계했다. 최 순경은 "안 좋은 생각을 했던 분이라 신고자도 크게 걱정했는데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고 경찰로서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최 순경의 이런 적극성은 어릴 적 배운 태권도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약 10년간 선수로 활약한 최 순경은 태권도 4단의 유단자다. 경찰이 되기 전에는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 최 순경이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한 것은 순전히 시민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최 순경은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며 "길을 가다가도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지체 없이 달려가서 짐을 같이 들어주고, 술에 취한 사람이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깨워도 보고 숨 쉬는지도 확인하며 도왔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넘게 태권도를 하며 길러온 체력과 활동적인 성격이 경찰이라는 직업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며 "현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매 순간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나은 현장 경찰이 되기 위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법 공부도 꾸준히 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상황에 맞는 법을 적절히 적용하고 이를 피의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법적 지식을 익히고 이를 설명하는 연습까지 했던 최 순경이다. 그는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이들을 조사할 때 법적 근거를 대야 하는데 초반에 횡설수설할 때가 종종 있었다"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조직이 욕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퇴근하면 항상 법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말하는 연습도 병행했다"고 말했다.
현재 최 순경은 기동대 의무 복무로 인해 올해 4월부터 서울경찰청 제8기동단 84기동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 정치 상황 등으로 집회가 많이 열리면서 최 순경의 하루는 정신없이 흐르고 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열리는 집회 특성상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다. 당직 때도 현장 인력 부족으로 출근 전 집회 현장을 지키는 경우도 잦다. 최 순경은 "요즘은 첫차가 뜨기 전에 출근해야 할 때도 있어서 전날 근무지에 와서 잠을 자고 일을 시작하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최 순경의 기동대 첫 근무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집회였다. 최 순경은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선배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뉴스에서는 헌법재판소 인근을 진공 상태로 만든다고 한 상황에서 막상 출동하려니 무서웠다"며 "당시에는 긴장을 엄청나게 해서 현장에서 온몸이 굳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 순경은 특유의 적극성으로 빠르게 적응했다. 최 순경은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며 "헌재 인근 집회에 처음 나갔을 당시 굳어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고, 경찰버스에서 대기하다가 장비를 꺼낼 때 가장 먼저 내려서 장비를 정리하는 등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다 보니 빠르게 업무를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집회 현장 업무도 능숙해졌다. 최 순경은 "집회 현장에 가면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릴 적부터 할머니랑 지낸 덕에 노인을 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며 "집회에 참여한 노인들이 나에게 불만을 제기하면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 대하듯이 웃으면서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설명하면 분위기가 누그러지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당직 근무를 마친 최 순경은 이틀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집회 현장에 나간다. 지구대 때처럼 신고받고 출동하는 일은 없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시민들을 지키고 있다. 고단한 하루 속에서도 최 순경은 강제추행범을 쫓던 그 날처럼 매일 두발로 현장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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