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자에게 듣는다](16)"남다른 R&D 속도…초고압 해저케이블 집중할 것"

34년 전선 외길…김현주 대한전선 CTO
미래 먹거리 HVDC 해저케이블 육성 집중
"남들보다 빠른 R&D…일당백 엔지니어"
HPFF 솔루션, 초전도 등 미래 경쟁 대비

편집자주한국 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이 겹쳐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결국 기술이다. 기술은 기업의 생명줄이자 존재 가치다. 기업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CTO는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을 분석해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CTO를 만나 각 산업이 주목하는 핵심 기술과 차별화 전략을 들어봤다. 주요 기업의 기술 전략을 통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한다.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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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는 "지중케이블은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했다"며 "풍력·태양광 등 에너지는 모두 직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초고압직류송전(HVDC)이 미래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 전선기업 대한전선은 HVDC 해저케이블을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다. 충남 당진시에 짓고 있는 해저케이블 2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세계 5위권 수준의 생산·시공 역량을 갖출 것으로 기대한다.


김현주 CTO는 서울 서초구 대한전선 본사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HVDC 해저케이블에 집중하고 있다"며 "2공장이 완성되면 640㎸ 케이블 생산 역량도 갖추는데, 그때까지 인증을 마치도록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당진공장(면적 35만㎡)은 초고압 케이블 기준 연 2만9220t의 생산능력(CAPA)을 갖추고 있다. 이달 종합 준공되는 해저케이블 1공장에선 내부망(154㎸), 외부망(345㎸)을 생산하며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착공하는 해저케이블 2공장에선 외부망(400㎸)과 HVDC(640㎸)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대한전선은 생산기지 확장으로 글로벌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김 CTO는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은 2027년을 기점으로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라며 "생산부터 시공까지 턴키(Turn-key·일괄수행) 경쟁력으로 세계 5~6위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사전 영업을 통해 영국 내셔널그리드, 스페인 오션윈즈, 싱가포르 MEO 등과 협력 관계를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김 CTO는 대한전선만의 특장점을 묻는 말에 "설비에 투자하면 웬만한 케이블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접속재는 진입이 어렵다"며 "대한전선은 접속재까지 직접 개발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500㎸급 접속재를 가장 먼저 개발했다"며 "해저케이블 생산기지에 HVDC 전용 시험장까지 완공하면 기술 내재화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들과는 다른 개발 속도"…'일당백' 엔지니어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케이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케이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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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재무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대한전선은 2021년 5월 호반그룹에 편입되면서 그룹 차원의 탄탄한 자금력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재무 구조를 빠르게 개선했다. 당진 해저케이블 1~2공장에 총 94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도 재무 구조부터 회복한 결과다.

특히 2023년 12월 500억원을 들여 국내 유일의 해저케이블 포설선(CLV) 팔로스(6200t급)를 확보했고, 해저케이블 시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1만t급 CLV 추가 확보도 검토하고 있다.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건 엔지니어들의 '남다른 속도감' 덕분이다. 김 CTO는 "10년 걸릴 개발을 5년이면 끝낼 정도로 엔지니어들의 역량과 단합이 뛰어나다"며 "미국에서 진행된 모든 500㎸ 프로젝트를 수주·수행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현지에서 기술 경쟁력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대한전선은 비교적 늦은 2008년 500㎸ 초고압교류송전(HVAC) 케이블 시장에 처음 진입했지만, 불과 5년 만에 개발을 마치고 미국 시장에 곧바로 납품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기술 개발을 지휘하는 김 CTO는 언제나 '현장'을 강조한다. 1991년부터 34년째 대한전선에 몸담고 있는 그는 국내 현장을 거쳐 싱가포르·북아일랜드 등 해외 현장까지 두루 경험하고 개발팀장을 역임했다. 김 CTO는 "접속재를 납품하고 현장에서 시공도 챙기다 보니 개발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며 "지금도 엔지니어들이 반드시 현장까지 챙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개발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도록 간섭을 최소화한다"고 설명했다.


"HPFF 교체 솔루션, 美 뉴욕에서도 통했다"
대한전선의 초고압 XLPE 케이블. 대한전선

대한전선의 초고압 XLPE 케이블. 대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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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력 시장은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따른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뿐만 아니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도 상당하다. 대한전선은 '고압유입식 전력망 교체(HPFF Retrofitting) 솔루션'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김 CTO가 "국내에서 이 같은 솔루션을 개발하고 시공까지 할 수 있는 기업은 대한전선이 유일하다"고 자랑하는 기술력이다.


HPFF 솔루션은 대한전선이 개발한 특화 케이블 및 방향 전환 포설 방식으로, 복잡한 도심이나 교통·인파 등이 밀접한 지역에서도 신속한 작업 수행이 가능하다. 꼬임형 구조로 외경을 줄인 신형 케이블로 과거에 설치된 좁은 관로에도 시공할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방향 전환 포설 장치는 이미 미국과 호주에서 발 빠르게 특허를 확보했다.


김 CTO는 "HPFF 솔루션은 단심 XLPE(가교 폴리에틸렌) 케이블 3개를 연합해 하나의 케이블로 만들어 외경을 줄이고, 이를 과거에 설치된 노후 관로에 적용할 수 있다"며 "복잡한 시내에서도 차선 1개만 확보하면 빠르게 시공하고 철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미국 뉴욕 도심의 노후 전력망을 성공적으로 교체하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AI 산업, 결국 핵심은 전력"…미래 먹거리 발굴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현주 대한전선 최고기술책임자(CTO·전무)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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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은 송전 외에 로봇용 케이블, 무선 전력 송신·통신 솔루션, 항공·우주 산업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연구소 내에 연구기획팀을 신설해 신사업 발굴에도 착수한 상태다. 특히 '미래 전력망'으로 평가되는 초전도 케이블은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이 거의 없어 낮은 전압으로도 대용량의 전류를 송전할 수 있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당진 케이블공장 내 버스덕트 전용 공장의 규모를 기존 대비 3배로 확장하고 핵심 설비를 신규 도입했다. 생산 효율성과 기술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투자다. 기존에 보유했던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절연 설비도 증설했다.


특히 대한전선은 AI 산업 확장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에도 주목하고 있다. 김 CTO는 "AI 산업은 전력을 많이 쓰기 때문에 결국 전력망이 관건"이라며 "대한전선은 초전도 케이블을 개발하면서 확보한 냉각장치 기술을 AI 서버 냉각 등에 활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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