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공약, 가족중심 과세 전환에 30조 세수감소…현실화 놓고 고심

'미국식' 부부 단위 과세 표준 신설
'프랑스식' N분의 N승 전환
시뮬레이션시 최대 32조 세수 감소 초래
기혼·유자녀에 세제 인센티브

정부가 소득세 과세 체계를 미국식이나 프랑스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 소득세 과세 단위를 현행 개인 단위에서 부부와 가족 단위로 전환한다는 구상을 밝히면서다. 다만 두 제도는 약 24조원 또는 32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수 감소를 유발할 것으로 추산되는 데다가, 기혼과 유자녀 가구에 크게 유리한 제도인 만큼 당장 추진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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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이행 방안을 토대로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가족친화적 소득세 개편안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 공약집에는 ▲혼인한 부부가 연말정산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부부 단위 과세표준’ 신설 ▲부부의 소득과 자녀 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세 체계 전환 방안 마련이 명시되어 있다. 두 제도는 모두 출산과 결혼에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세금 과세 체계로 ‘부부 단위 과세표준 신설’은 미국식, ‘소득과 자녀 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세 체계’는 프랑스식 N분의 N승제(PAC)를 염두에 둔 구상이다.


미국식: 부부 합산 신고 → 공제·세율 혜택 두 배

개인이 아닌 부부 단위로 과세할 수 있게 선택권을 제공하는 제도는 미국에서 시행 중이다. 납세자는 개인 단위 과세와 부부 단위 과세 중 유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데 대부분 부부 단위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액수나 과세 표준 구간이 사실상 두 배로 확장되기 때문에 세 부담이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부합산 신고 시 받을 수 있는 표준공제금액 한도만 봐도 개인신고(4750달러)의 2배인 9500달러(약 1300만원)를 적용받는다. 고소득자 남편과 가정주부인 부인으로 구성된 홑벌이 가구는 개인별로 신고했을 때 받을 수 있었던 공제 혜택을 더 크게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납세자가 부부 단위 신고를 택할 경우, 소득이 불균형한 ‘홑벌이 가정’에서 절세 효과는 더 커진다. 예컨대 한 배우자가 1억원을, 다른 배우자가 3000만원을 벌면 개별 신고 시 1억원을 버는 배우자는 고소득자의 상위세율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합산 신고 시 총소득이 1억3000만원으로 잡히고 과표가 두 배가 되므로 각각 6500만원에 대한 세금을 더 낮은 세율로 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미국은 일부 비과세소득(생명 보험금, 상속과 증여로 취득한 재산 등)을 제외한 모든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자본소득 등 총소득이 신고 대상인 데다 누진세가 이뤄지는 만큼, 결혼한 부부에 큰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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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가족 구성원 수로 나눈 뒤 세율 적용…자녀 많을수록 혜택

프랑스는 미국식보다 더 앞선 가족 친화적 세제로 꼽힌다.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세금 부담을 확연히 줄여주는 제도로 N은 가족 수가 많을수록 커지는 가족 계수다. 아빠 1, 엄마 1, 첫째 자녀는 0.5, 둘째 0.5, 셋째부터는 1명당 1이다. 다섯 자녀가 있는 7인 가구는 N이 6이 된다. 부모의 소득을 6으로 나누고 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1인당 세금을 매기고 여기에 다시 N을 곱해 최종 세금을 결정한다.


자녀가 많을수록 실질 과세표준이 급격히 낮아져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 사실상 ‘다자녀 우대 조세제도’로, 저출산 극복과 양육 부담 경감이 세제 설계 목적에 명시된 제도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부부의 소득과 자녀 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과세체계 마련’ 항목이 바로 이러한 프랑스식 모델에 가깝다.

24조원 또는 32조원 대규모 세수 손실 유발

정부는 두 세제 제도는 가족 친화적인 제도로 출산과 결혼에 커다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로 보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세수 감소다. 정부는 해당 제도를 현실화할 경우 20조~30조원에 달하는 세수 감소를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종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공제제도와 세율제도 개편 없이 단순히 과세 단위만 2분의 2승제(미국식 유사)와 N분의 N승제(프랑스식)로 개편하면 각각 23조8000억원과 31조9000억원의 대규모 세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오 본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수십조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며 “(해당 시스템으로 바꾸려면) 근로소득세액공제 폐지, 기타 공제 항목 축소, 세율 인상 등이 종합적으로 병행돼야 막대한 세수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가족 중심 과세는 단독 가구, 1인 가구에는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구에 집중된 혜택이 납세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재부는 현재 단계는 공약 이행과 국정과제를 결정하기 위한 단계인 만큼, 제도 설계의 사회적 수용성 등을 고려해 국정기획위원회와 소통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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