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지역 기업들이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자국에 확산될 가능성에 대비해 전면적인 위기 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직원 대피, 공급망 점검,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 등을 포함한 비상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등 사업 차질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현지시간) 걸프 지역을 중심으로 위기관리 전문 자문업체들에 대한 문의가 최근 급격히 늘었으며, 실제로 이미 여러 기업이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대응방안에는 현장 인력 철수, 정보 수집, 물류 우회 전략 등이 포함된다.
위기관리 자문사인 컨트롤 리스크의 톰 그리핀 중동·아프리카 수석 파트너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지역 갈등 고조와 관련된 기업들의 문의가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이라크와 이스라엘에서의 대피 지원부터 현지 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까지 다양한 대응 수요가 발생 중"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이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이들 국가에 주둔한 미군 기지가 잠재적 타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이란이 자국 본토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걸프 지역의 정유·가스 시설 등 에너지 인프라를 보복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기업과 국가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위기관리 전문업체 크롤의 필 마일스 부국장은 중동 내 다양한 인프라가 이번 충돌의 간접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에너지 시설, 공공 인프라, 미군 기지 등 중동 전역에는 다양한 목표물이 존재한다"며 "갈등 수위가 확전 단계(escalatory ladder)로 진입하면 이들 모두가 실제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국지 분쟁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며 지역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연합해 이란을 군사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어 걸프 지역 전역으로의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이후 컨트롤 리스크를 비롯한 국제 자문 회사들은 여러 글로벌 기업의 이스라엘 현지 직원 철수를 지원했으며, 이란 내에서 직원들이 육로를 통해 안전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 업무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Renault)는 테헤란 주재 직원 70명에게 재택근무 지시를 내렸으며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응급지원 기관인 인터내셔널 SOS의 두바이 및 런던 센터는 "지난 금요일 이후 거의 24시간 대응 체제로 고객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기관리 플랫폼 크라이시스24(Crisis24)의 믹 샤프 부사장은 "이스라엘 현지에 배치된 150명의 정보 분석 요원이 지금까지 40여 개 기업의 철수 작업을 지원했다"며 "요르단과 이집트가 1차 경유지이고, 카타르 도하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를 통한 환승 루트도 함께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걸프 지역의 지정학적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차단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위협 요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3분의 1이 통과하는 통로로, 카타르 및 UAE의 액화천연가스(LNG)도 이곳을 통해 수출된다.
이 지역 최대 물류 허브인 두바이 제벨알리항을 운영하는 DP월드는 "현재까지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으나 "호르무즈 해협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정부 당국과 협력하며 물류 우회 및 대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들은 무력 충돌이 실제 걸프 지역 금융 중심지까지 확대될 경우를 가정해 대외 메시지 전략까지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걸프 지역 내 한 PR 전문 회사가 "금융 중심지가 공격받을 경우 어떤 입장을 내야 할지에 대한 문의를 클라이언트로부터 받고 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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