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이란 공격' 방아쇠를 당겼다. 2주의 시한을 예고한 지 불과 이틀 만에 기습 공습을 단행한 것이다. 그는 백악관 담화를 통해 이란이 미국 요구대로 핵무기 개발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더 강력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공화당과 일부 참모 등의 반대 속에서 신중한 표정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정치적 명분'을 얻자 곧바로 버튼을 누른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새벽 미국은 이란 핵 시설 3곳(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에 대해 대규모 정밀 공습을 감행하며 또다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공격 목표는 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으로, 이란 핵 개발의 핵심 거점들이었다. 지난 19일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2주'라는 공격 결정 시한을 설정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말을 뒤집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짐작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각에선 미국의 이란 '기만전술'이라는 평까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당일 밤 백악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열고 "중동의 불량배인 이란은 이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며 "향후 공격은 훨씬 더 강력하고 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담화문에서 이란을 40년간 '미국에 죽음을' 외쳐온 국가로 지목하며, 이로 인해 미국과 전 세계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강경한 어조였다. 그는 이런 공습 사실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가장 먼저 알렸다. 이후에도 미국 국기인 성조기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게시하며 미국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다.
이번 공습은 5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이란 공격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이란 혁명수비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한 작전을 승인한 바 있다. '이란의 국민 영웅'으로 통하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하면서 중동에 미친 파장은 컸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그는 SNS를 통해 성조기를 게시하며 성과를 자축했다. 이후에도 1기 임기 중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꼽으며 자찬해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며 정치를 다졌고, 첫 임기 중 이란의 카심 술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비개입주의 성향의 일부 지지자들이 이탈하게 만들었지만, 트럼프는 이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습 공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결단은 일부 공화당과 백악관 참모들의 반대 속에서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책사' 스티븐 배넌을 비롯해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의 보수 논객 터커 칼슨, 친(親)트럼프 의원인 공화당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파들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외국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지 세력이 이탈할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인플레이션, 이민, 치안 문제 등 국내 현안이 심각한 가운데 해외보다 자국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정보공유 같은 비군사적 방식에 그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칼슨의 경우 방송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을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판했다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한 칼슨을 "괴짜(kooky)"로 칭하며 그가 이후에 사과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이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의회의 반격도 있었다. 공화당 토머스 매시 연방하원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이란 공격 전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매시 의원은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의회가 헌법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팀 버쳇 하원의원도 "중동에서의 끝없는 전쟁은 더 필요 없다. 나이 많은 이들이 결정을 내리고 젊은이들이 죽는 것이 전쟁의 역사"라면서 전쟁 개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최근 백악관 내부의 기류는 달라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짚었다. 일부 참모진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공습을 이어갈 수 없다면, 미국이 짧고 강력한 타격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논리를 선회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결국 트럼프에게는 전략적 명분과 정치적 유연성이 생겼고, 그는 이란의 핵 시설을 표적으로 정해 공격을 승인했다.
전통 공화당원들과 달리 강성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들의 견고한 지지도 트럼프 대통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보수진영의 균열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내 지지자들은 지금 나와 예전보다 더 사랑에 빠졌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쟁 반대파인 스티븐 배넌 역시 "MAGA 지지층은 불만은 있어도 결국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며 합리적 수용 가능성을 예측했다.
여론조사도 이를 뒷받침했다. 보수 성향 언론인 뉴욕포스트가 여론조사기관 J.L파트너스의 16~17일 설문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MAGA 공화당원 중 무려 65%가 이란 공습을 지지했다. 전통적 공화당원 사이에서의 지지율(51%)이나 공화당 전체 유권자(58%) 보다 각각 14%포인트, 7%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J.L파트너스는 작년 11월 미국 47대 대선 결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 간 3%포인트 격차를 마치 예견한 듯 맞춘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감행한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의 실질적 효과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일부 미국 정보당국은 이란이 우라늄을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이란이 이번 공격을 제한된 타격으로 간주한다면, 보복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이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면, 중동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찬한 것과 달리 이란의 실제 피해 규모를 당사국들 외에 직접 확인하긴 어렵다. 포르도가 위치한 쿰 주 위기관리본부는 성명을 통해 "쿰과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아무런 위험이 없다"며 엇갈린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도 X계정에 이란 국기를 게재하며 "이제 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란원자력기구(ATO)는 방사선 시스템 데이터 및 현장 조사 결과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주민들에게 오염이나 위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불법 공격 이후 현장 조사 및 방사선 시스템 데이터에 따르면 오염이 기록되지 않았다"며 "이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 요소는 없다"고 말했다.
타임지는 "이번 작전은 수십 년 만에 미국이 이란 영토에 감행한 가장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라며 에너지 시장 불안, 미군 위험 노출, 친이란 세력의 참전을 우려했다. 특히 "트럼프는 이번 공습을 통해 이란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길 원하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BBC는 "트럼프는 이번 미군의 폭격이 협상에서 이란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기를 기대하는 듯하지만, 이스라엘 공격을 받는 동안 대화에 나서지 않던 이란이 미국의 폭격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더 낮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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