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써도 5분 만에 다 젖어요. 연차 쓸 걸 그랬나 싶네요."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든 20일 오전 8시께 서울 강남역 2번 출구.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민들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백팩을 앞으로 메고 곳곳 물웅덩이를 피해 한 발 한 발 디뎠다. 우산을 써도 옷은 이미 퍼붓는 장맛비에 축축이 젖었다. 한때 불어닥친 강풍에 뒤집힌 우산을 붙잡고 씨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인근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는 직장인 박헌재씨(29)는 "지각할 뻔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보된 비 소식에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난 탓이다. 박씨는 "장마철 지하철은 덥고 습하고 사람은 더 많아 출근하기 전부터 이미 녹초가 된 기분"이라며 "마음 같아선 반차라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 배모씨(46)는 "사당동에서 출근하는데 사람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 지하철 한두 대를 그냥 보냈다"며 "다른 사람들 우산에 옷까지 젖어 찜찜하다"고 했다. 강서구에서 출근 중인 신해린씨(33)는 "출근길인데도 마치 하루를 다 산 느낌"이라며 "회사 도착하면 일보다 옷 말리는 게 먼저일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출근한다는 김모씨(42)는 "하필 오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데 옷이 구겨지고 머리가 망가져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는다"며 "이제 장마철 시작이라는데 앞으로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여의도역에서도 우산을 든 시민들이 출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바짓단이 젖어있는 승객들도 많았고, 일부 승객들은 폭우에 대비해 장화를 신고, 갈아신을 신발을 챙겨오거나 우비를 챙기기도 했다. 직장인 최모씨(27)는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 두 배는 혼잡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민씨(29)도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며 "(집에서) 회사가 가까워서 이렇게 일찍 나오지는 않는데, 혹시나 해서 조금 일찍 출발했다"고 했다.
여의도역 밖 버스정류장도 우산을 쓴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환승을 기다리던 50대 박모씨는 "원래는 운동도 할 겸 한 정거장 전인 신길역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여의도역까지 타고 왔다"고 말했다. 강북구에서 출발했다는 이모씨(37)는 "덥고 습한데 비까지 와서 불편하다"며 "비가 많이 와서 늦을까 봐 평소보다 일찍 출발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종로구 광화문 인근 세종대로 사거리에도 직장인들이 우산을 쓴 채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부분 우산을 쓰고 가방을 든 탓에 손이 모자란 모습이었다. 직장인 송모씨(36)는 "우산이랑 짐을 들고 다녀서 부산하고, 바지 밑단도 다 젖어 축축하다"며 "아침에 눈 뜨니 비가 오고 있어 더 출근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25)도 "우산을 써도 등 뒤로 빠져나온 배낭이 다 젖었다"고 했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어 옷이 젖기도 했다. 대중교통은 습기와 젖은 우산으로 가득 찼다. 직장인 이모씨(38)는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버스 바닥이 미끄러웠다"며 "우산을 안 접는 사람들도 있어 찝찝했다"고 말했다. 박모씨(49)는 평소 출근길과 다를 바 없다면서도 "습기가 평소 두배는 많은 것 같다"며 "지하철에 습기가 가득 차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했다.
한편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서울시는 오전 6시부로 비상근무 1단계를 발령했다. 현재 서울에는 시간당 5㎜ 이하의 비가 내리고 있으며 이날 오후부터 밤사이에는 시간당 30~50㎜의 강한 비가 예보됐다. 예상 강수량은 50~100㎜, 많은 곳은 150㎜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장 강한 비가 예보된 것은 이날 저녁부터 21일 오전까지로, 퇴근길 역시 혼잡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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