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막을 내리는 세계 최대 바이오 전시회 '바이오 USA'는 전통의 바이오 강국뿐 아니라 신흥 바이오 강국들의 부상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한국 기업들도 CDMO(위탁개발생산)·ADC(항체약물접합체) 등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줬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확실히 위기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인도는 이번 BIO USA에 총 40여개 기업이 참가해 각기 20건 이상의 미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신약 및 바이오 연구개발 전문 CRO(위탁연구기관)인 비프라젠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인도는 국가적으로 바이오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매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지난해 바이오USA에 참여했을 때보다 고객사들의 커진 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관에는 인도 생명공학부 등 정부 기관과 함께 주요 바이오 기업인 바라트 바이오텍(Bharat Biotech), 세계 최대 백신제조사인 인도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등 참여해 인도의 바이오 역량을 홍보했다.
인도는 자국 바이오텍 '이뮤넬 테라퓨틱스'가 올해 1월 CAR-T 치료제 '카테미(Qartemi)'의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CAR-T 치료제는 환자의 면역 세포인 T 세포를 채취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후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차세대 항암 치료법이다. 특히 이 제품은 미국·유럽에서의 투약비용(약 5~6억 원)과 비교해 10분의 1 이하의 가격으로 환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인도 바이오가 '값싼 복제약 생산기지'에서 벗어나 혁신 항암제의 자체 개발·상용화 주체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싱가포르·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떠오르는 신흥 바이오 강국의 기업들은 국가관 없이 개별 참여했음에도 활발한 모습이었다. 특히 싱가포르 바이오텍 바이오신젠(Biosyngen)은 TCR-T, CAR-T 등 면역세포 기반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고형암에 적용한 자체 임상 현황을 공개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임상·시장 진입에서 인도·동남아 신흥국들의 추격이 생각보다 빠르다"며 "한국이 잘해왔던 바이오 분야와 겹쳐 우리가 3~5년 내 추월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후발 주자에 밀리면 우리는 다시 '바이오 주변국'으로 머물게 된다"며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지금처럼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전략으론 글로벌 톱5 진입은 불가능하다"며 "혁신기술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의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 기업들도 지난해 불참했던 행사에 올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DNA 인코딩 화합물 기업 히트젠은 전시회 기간 중 50건 이상 미팅을 진행했고, AI 신약 개발 기업 디바믹스는 40건이 넘는 비즈니스 미팅을 소화했다. 노연홍 제약바이오협회장은 "중국은 신약 개발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고, 원료의약품의 경우 세계적으로 의존도가 높다"며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의 위기도 지적했다.
그간 정부와 산업계는 한국을 '세계 5대 바이오강국'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을 세워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의 성장이 이를 뒷받침해왔다. 하지만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아직 글로벌 임상 3상 진입 후 상업화까지의 성공사례가 적다는 점, 글로벌 CDMO 경쟁 과열 등은 한국의 바이오 경쟁력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본격적 확장을 하기엔 공급망 문제 등으로 아직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태국·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의 도전은 장기적으로 CDMO나 고부가 기술 경쟁을 위협할 수 있다"며 "ADC 등 기술장벽이 높은 분야에서 포지셔닝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모델로 가격경쟁력을 보완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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