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M&A나서는 홈플러스, 관건은 가격

최대 최권자 메리츠, 인가 전 M&A 동의
청산가치 3조7000억원에 매각가 형성 전망
유통업 불황, 높은 인수대금에 1조원 안팎 비관론도
PE는 인수에 손사래…네이버·GS·쿠팡 등 거론

홈플러스가 새 주인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지주가 홈플러스의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동의하기로 하면서다. 관건은 가격이다. 청산가치가 높음에도 새 인수자를 구하는 길을 택한 만큼, 매각가를 두고 채권단과 인수자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는 서울회생법원에 홈플러스 회생 인가 전 M&A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메리츠는 메리츠화재·증권·캐피탈 등 3사를 통해 지난해 홈플러스에 총 1조2000억원 대출을 해준 최대 채권자다.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서울회생법원에 인가 전 M&A를 신청했는데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선순위 채권자인 메리츠의 동의가 필요했다. 메리츠의 이번 결정으로 홈플러스는 본격적인 M&A에 나서게 됐다.

서울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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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가격…1조~4조원 설왕설래

홈플러스 M&A가 이제 막 시작됐지만 시장에선 가격을 두고 벌써 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매각가는 청산가치로 책정된 3조7000억원 안팎이다. 최근 서울회생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를 2조5000억원, 청산가치를 3조7000억원으로 평가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43조를 보면 '회생계획에 의한 변제방법이 채무자의 사업을 청산할 때 각 채권자에게 변제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아니하게 변제하는 내용일 것. 다만 채권자가 동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즉, 인수대금은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에 의해 이를 상회하는 금액이어야 해 홈플러스 매각가는 최소 3조70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반면 청산가치 이하의 가격으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청산가치가 높음에도 메리츠가 인가 전 M&A에 동의한 점,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채권단이 청산가치 이하로 매각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홈플러스는 직고용 임직원이 1만9000명에 달해 파산 시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정치권에서 홈플러스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 홈플러스를 파산시키기는 쉽지 않다. 앞서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인가 전 M&A가 이뤄질 경우 2조5000억원 규모의 홈플러스 보통주 지분을 전량 무상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M&A에 힘을 싣기도 했다.


특히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경쟁사도 부실 점포를 대거 줄이는 등 오프라인 유통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4조원에 가까운 인수 금액을 지불할 곳이 현실적으로 없을 것이란 점도 걸림돌이다. 이에 여러 사안을 고려했을 때 극단적으로 원매자 측에서 1조원 안팎의 인수 희망가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손해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청산가치를 기준으로 매각가가 형성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파산을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인수 희망자와 채권단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져 어느 정도 인하된 가격에 매각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새 주인 찾지만 사모펀드는 손사래

홈플러스 새 주인 찾기는 난항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조원 단위 인수대금을 감당할 기업이 많지 않아 사모펀드 운용사(PE)가 나서줘야 하지만 대부분이 홈플러스 인수에 부정적인 평가를 남겼기 때문이다.


1조원대 규모의 펀드를 운용 중인 한 PE 대표는 "정치적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기관출자자(LP)들의 의견을 뒤로한 채 인수에 나설 수 있는 PE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PE 대표는 "PE가 인수한 뒤 문제가 발생했는데, 또다시 PE가 인수에 나선다고 하면 많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유통업 자체가 침체를 겪고 있고, 새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도 있어 홈플러스를 인수해 새로운 성장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원 단위 딜에 PE가 나서지 않으면 매각이 쉽지 않을 거란 의견도 있다.


중견 PE의 대표는 "일각에선 매각가를 청산가치보다 크게 낮은 1조원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수천억 원 규모의 미지급금과 재무제표상 조원 단위 부채 등 인수자가 떠안아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 "일반 기업에서 인수하기엔 정무적 판단 논란이 나올 수 있어 조원 단위 펀드를 운용하는 PE에서 나서지 않으면 M&A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업계에선 다양한 인수 후보자가 거론되고 있다. 네이버, GS 등 유통 관련 대기업들이 우선 오르내린다. 또 쿠팡과 알리익스프레스도 탄탄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잠재적 인수 후보자로 꼽힌다. 이들이 홈플러스를 품을 경우 전국의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매장을 활용한 신선식품 분야 강화 등도 메리트로 꼽힌다.


다만 후보군 대부분은 홈플러스 인수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고 대형마트 성장 둔화도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올해 4월 집계를 보면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대비 석 달 연속 감소했고,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경쟁사도 부실 점포를 대거 줄이고 있다.


분할 매각 가능성도 있다. 앞서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6월 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분할 매각을 추진했지만, 올해 3월 법정관리 사태로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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