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만 구매전 판매자 휴대폰 번호 노출…모호한 전자상거래법 논란

e커머스 4개사에 '개인판매자' 등록해보니
플랫폼별 판매자 정보 공개 '제각각'
네이버, 구매 전에도 판매자 생년월일·연락처 노출
공정위 "셀러 피해 여부 등 현황 파악 나설 것"

네이버가 주요 e커머스 플랫폼 가운데 유일하게 개인판매자의 연락처와 생년월일 같은 개인정보를 구매 전부터 열람이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판매자 정보를 최대한 제공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빌미가 된 것이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의 모호한 규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경제가 19일 네이버( NAVER ) 스마트스토어·11번가·지마켓·옥션 등 주요 e커머스 플랫폼 4곳에 개인판매자로 가입한 뒤 판매자 정보 공개범위를 비교한 결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만 구매 전 단계에서 이름·생년월일·주소·연락처·이메일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판매자 정보를 모두 열람할 수 있었다. 반면 11번가는 구매 전에는 이름과 이메일만 확인할 수 있고 결제가 진행된 이후에 추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지마켓과 옥션은 구매가 완료된 이후에 판매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왼쪽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11번가, 지마켓·옥션의 개인판매자 정보 제공 화면. 주요 e커머스 플랫폼 중 구매 전 단계에서 생년월일·주소·연락처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플랫폼은 네이버가 유일했다.

왼쪽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11번가, 지마켓·옥션의 개인판매자 정보 제공 화면. 주요 e커머스 플랫폼 중 구매 전 단계에서 생년월일·주소·연락처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플랫폼은 네이버가 유일했다.

원본보기 아이콘

네이버만 구매전 판매자 휴대폰 번호 노출…모호한 전자상거래법 논란 원본보기 아이콘

플랫폼의 정보 제공이 차이를 보이는 건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이 개인판매자에 대해 '거래당사자에게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라'고만 규정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제공시점이나 공개항목에 대한 명시가 없다 보니 각 플랫폼이 내부 정책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석, 운영하는 것이다.

네이버 측은 "거래당사자의 범위나 정보 제공시점에 대한 유권해석이 없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법령을 충실히 준수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향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이에 따라 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법 주무부처다.


일각에서는 개인판매자 정보가 구매 전부터 광범위하게 노출된다면 크롤링(웹사이트의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기술)을 통해 개인정보가 수집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73만명의 정보가 다크웹에서 파일 형태로 유통 중인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올해 1월 다크웹 마켓에 올라온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과거 판매자들의 개인정보 샘플파일. 이들의 스토어명,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생년월일 등이 적혀있다. 다크웹 화면 캡처

올해 1월 다크웹 마켓에 올라온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과거 판매자들의 개인정보 샘플파일. 이들의 스토어명,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생년월일 등이 적혀있다. 다크웹 화면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
다크웹 마켓에 게시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과거 판매자 정보 판매 게시물 화면. 73만2323명의 정보가 올라와있다. 다크웹 화면 캡처

다크웹 마켓에 게시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과거 판매자 정보 판매 게시물 화면. 73만2323명의 정보가 올라와있다. 다크웹 화면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

전상범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현행법상 사업자는 구매 전 판매자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개인판매자의 경우 거래당사자에게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라고만 규정돼 있다"며 "네이버처럼 구매 전부터 생년월일과 연락처까지 모두 공개하는 구조는 법 해석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네이버만 구매전 판매자 휴대폰 번호 노출…모호한 전자상거래법 논란 원본보기 아이콘

해외와 비교해도 한국의 판매자 정보 공개범위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시행된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판매자 이름·주소·이메일·연락처 등을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생년월일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미국도 대부분 플랫폼이 구매 완료 후에만 이메일이나 고객센터를 통한 간접 연락 수단을 제공하며 민감한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해외에선 판매자와 소비자 간 권익 균형을 고려해 정보 공개범위를 최소화하고 있으며 민감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인판매자의 경우 스토킹 같은 위험을 감안해 판매자 정보 사전공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판매자 정보가 플랫폼별로 제각각 공개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플랫폼별 정보공개 범위 차이에 따른 실태를 조사하고 셀러(판매자) 측 피해나 제도적 미비점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도 "변화된 환경에 맞춰 법이 정비되는 방향을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