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주 흔들리는 DL이앤씨, ‘포스트 중동’ 찾는다

과거 영광 어디로…지정학 리스크에 해외수주 추락
‘황금알’ 이란, 무력충돌에 수주 재개 불투명
中 밀려오고 중동 닫히고…韓 건설사, 사면초가

DL이앤씨 의 해외건설 수주 부진이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단 한 건의 신규 수주 없이 계약 변경과 증액에 의존했는데, 올해도 수주액과 신규 수주 건수가 각각 수백억 원대, 1건에 그치고 있다. 한때 이란 등 중동에서 수천억 원대 프로젝트를 쓸어 담으며 수주액 '톱10'을 지키던 DL이앤씨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특히 과거 '황금알'이었던 이란이 최근 이스라엘과 극한 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수주 재개 가능성이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시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전 개발사업이었던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DL이앤씨와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토교통부.

시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전 개발사업이었던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DL이앤씨와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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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DL이앤씨의 1~5월 해외건설 수주액은 1808만달러(약 25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건설사 중 26위에 해당한다. 신규 수주는 1500만달러 규모인 인도네시아 수력발전소 건설관리(CM) 사업 하나뿐이다. 지난해에는 신규 수주 없이 기존 계약 증액과 변경만으로 4604만달러(약 630억원)를 기록하며 41위에 머물렀다.


과거 10위권 내 상시 포진했던 수주 실적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DL이앤씨는 해외건설 수주액이 집계된 이래 479억달러(지난해 기준)의 수주고를 올려 전체 6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2년간의 부진으로 존재감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DL이앤씨의 부진 배경에는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 기조와 지정학 리스크가 있다. 과거 대표적인 수주 텃밭이었던 이란과 러시아가 동시에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이란은 DL이앤씨가 1962년 수교 직후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먼저 진출한 시장이다. 세계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 가스전' 등 22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해 누적 공사비만 약 54억달러에 이른다. 이란 현지에서도 "한국 건설사 중 DL이앤씨가 가장 잘 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가 강화되며 2017년 이후 신규 수주가 끊겼고,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인해 사업 재개 전망도 어둡다.


DL이앤씨는 여전히 이란을 '언젠가 복귀할 수 있는 전략시장'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한국 건설사 중 유일하게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이란에 파견 중이었던 인력 1명은 현재 안전한 곳으로 철수한 상태"라며 "이란과 끈끈한 신뢰 관계를 이어오고 있어 상황이 반전되며 시장이 다시 열린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DL이앤씨는 2014년부터 러시아에 진출해 현재 '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 일부 구간을 시공 중이다. 사업비는 2조원 규모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면서 공사지연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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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수주 부진은 실적에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DL이앤씨의 해외 매출은 1조1859억원으로, 2023년(1조3238억원)보다 10.4% 줄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6.6%에서 14.3%로 감소했다.

DL이앤씨는 비중동권 시장에 뛰어들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수력발전소 건설관리 사업에 참여해 약 1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또 미국 원전기업 엑스에너지에 지분을 투자하며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진출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실적으로 전환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들어 한국 건설업계는 해외에서 고전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기준 해외수주 합계는 116억달러로, 전년 동기(136억달러) 대비 14.7% 감소했다. 특히 '수주 텃밭'이던 중동 지역에서의 수주액은 43.5% 급감했다. 이는 중동 경기 둔화에 더해 중국 건설사들의 공격적인 진출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중국 기업들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만 900억달러의 수주 실적을 올리며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정부가 제시한 올해 해외수주 목표(500억달러) 달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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