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역을 잇는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에너지 공약의 핵심은 한반도를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것이다. 서해안에서 시작해 남해, 동해를 따라 전국을 U자형 해상풍력 전력망으로 잇고, 이를 고압직류송전(HVDC)으로 산업단지와 연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구상만큼이나 현실의 벽도 높다. 해상풍력 입지 갈등과 주민 수용성 확보는 여전히 난제이고, HVDC 등 핵심 기술은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총사업비가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속도보다 기반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이 대통령 공약집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030년까지 서해안 전력망을 우선 구축하고, 2040년까지 전국 확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전국의 전력 수요처와 주요 산업단지를 고압직류송전(HVDC)으로 연결하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미래형 분산형 전력 체계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먼저 전남·서해안·제주 해역에 해상풍력단지를 집적 조성하고, 국가 기반망을 통해 안정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에 대해 국가 차원의 투자 유치를 확대하고, 주민 참여형 모델을 도입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수용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인천 앞바다에서 남해안, 경북 동해안을 잇는 해상풍력 중심의 'RE100 산업벨트' 조성도 추진된다. 수도권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지역 산업과 연계해 활용도를 높이고, 소규모 분산전원의 전력시장 참여 여건도 개선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분산전원을 지역 데이터센터, V2G(전기차 전력망 연계) 등과 연계한 '통합발전소(VPP)' 체제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구상도 내놨다.
또 이 대통령은 전날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에너지 안보의 미래' 확대 세션에 참석해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AI-에너지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AI 기술 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기후 변동성과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견고한 에너지 안보와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시스템 구축 방안으로는 국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비중 제고와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전력 공급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으나, 기반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먼저 마주친 현실은 해상풍력 입지 갈등과 주민 수용성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남 신안의 8.2GW 해상풍력단지다.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로 주목받았지만, 주민들이 해상풍력으로 인한 어업권 침해, 전자파 우려, 경관 훼손 문제 등을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해 사업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전력망 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총괄하지만, 실제 입지 결정과 주민 보상, 인허가는 지방정부가 맡는다. 이 때문에 중앙과 지방 간 입장 차이로 인해 계획 자체가 현장에서 무력화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호남 지역 전력망 확충을 위해 '선(先) 전력망 구축' 방침을 발표했으나, 전남·광주 등 지자체들이 인허가 비협조로 인해 송전선로 건설이 수차례 지연되면서, 정부는 "지자체 비협조로 인해 재생에너지 보급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공식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술적 기반 역시 불안하다. HVDC의 경우, 일부 국산화가 진행 중이지만, 대규모 변환소와 핵심 장비는 여전히 해외 기업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다. 제주~완도 구간 실증 사업에도 해외 업체가 주 공급사로 참여 중이다. ESS는 2017년 이후 잇단 화재 사고로 기술 신뢰도가 낮아졌고, V2G 기반 전력망도 제도 정비가 미비해 실증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비 부담도 상당하다. 업계에 따르면 1GW 해상풍력을 구축하는 데 약 3조~4조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송전망, 해저케이블, 변환소, 연계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전체 사업비는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 아직 정부는 이번 공약과 관련해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식이나 단계별 예산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반 없는 속도전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은 기술, 제도, 사회적 수용성, 재정 등 네 가지 축이 동시에 맞물려야 작동할 수 있다"라며 "비전만 강조해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 한 관계자는 "향후 국정과제화 여부나 실행방식 등은 관련 부처와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기술, 인허가,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실적인 추진 방향을 설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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