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은 때때로 시가 되기도 한다. 모든 음식은 입으로 먹고 배를 채울 뿐이지만, 어떤 음식엔 함께 음미할 만한 맛있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정성 깃든 음식은 인간의 삶에 잠들었던 기억을 촉발하고, 영혼 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래서 우리 입은 음식을 집어넣고, 그 대신 수다를 쏟아낸다. 철학도, 문학도, 종교도 본래 음식을 눈앞에 잔뜩 벌여 놓고 하는 행위였다. 플라톤은 철학이 배불리 먹고 마시면서 입으로 생각을 토하는 일임을 보여 주었고, 호메로스는 피에 굶주린 야수 아킬레우스를 고기 굽는 요리사로 만들어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대접하게 함으로써 화해와 평화의 밤을 열었다. 음식은 곤두선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달콤한 군침은 혀를 흐물대게 하는 법이다.
음식이 인간을 이야기꾼으로 만든다면, 요리사가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 '흑백 요리사'로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 요리사 에드워드 리의 '스모크 & 피클스'(위즈덤하우스)는 요리사-시인의 실존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뉴욕대 영문과 출신의 이 요리사는 비유와 상징을 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예술가를 닮은 요리사가 될 때 좋은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나는 가는 곳마다 그래피티를 만났다. 지금도 음식을 생각할 때면 위대한 지하 예술가들이 자기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들은 시간과 장소의 인과에 굴하지 않고, 뒤틀린 강철과 콘크리트에서는 불가능할 법한 우아함을 만들어 냈다."
이 책엔 130가지 음식이 조리법과 함께 실려 있다. 그래피티 예술가가 시간과 장소의 인과에 굴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발명하듯, 에드워드는 할머니로부터 배운 한국의 손맛과 미국 남부의 풍토를 결합해 식탁의 시를 써 나간다. 남부인 특유의 정서, 집단적 추억, 물려온 영혼이 짙게 밴, 그러나 뚜렷한 한식들이다.
함께 담긴 글의 풍미는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읽고 나면 절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어진다. 한 인터뷰에서 에드워드는 말했다. "셰프는 음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음식엔 맛뿐 아니라 이야기도 담겨 있어야 한다." 과연 에세이를 읽고 나면, 한국의 손맛이 어떻게 미국으로 이주해서 자리 잡고, 뒤섞여 비벼진 요리가 어떻게 한국인을 미국인으로, 미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꾸는지 생생히 깨달을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요리는 단지 조리 행위가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 가족과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미국 북부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란 에드워드가 남부 켄터키 루이빌로 이주해 식당을 열고,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 어린 시절에 먹었던 한국 음식과 새로 접한 미국 남부 음식의 전통을 융합해 비빔 요리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기나긴 여정을 펼쳐낸다.
모든 요리의 출발점에 '밥 짓기'가 있는 건 의미심장하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엔 밥은 기적 같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 따뜻한 전분 덩어리가 선사하는 편안한 감각은 나를 40여 년 전 뉴욕 브루클린의 창문 없는 작은 부엌에서 요리하던 할머니의 밥상 앞으로 순식간에 데려간다." 최상의 요리엔 이처럼 정체성 이야기가 담겨 있다. 좋은 음식은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에드워드에 따르면, 한식에서 밥은 흰 캔버스와 같다. 화가가 물감을 칠해서 빈 캔버스 위에 작품을 창조하듯, 한식 요리사는 흰밥에 반찬을 올려 먹는 걸 생각하면서 요리를 해 나간다. 밥은 한식의 출발점이자 완성태다. 이 책에 덮밥 요리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일 테다. 토마토 요거트 양고기, 소고기 옥수수, 된장에 절인 닭고기와 오렌지 땅콩, 매콤한 돼지고기 등 그 위에 무엇을 얹든 간에, 밥에 올려서 비벼 먹는 요리는 모두 한식이다! 제목은 그 부조화의 조화를 상징하는 시구다.
제목의 스모크(smoke)는 바비큐로 대표되는 미국 남부 훈연 요리의 강렬한 풍미를, 피클스(pickles)는 김치와 장아찌가 상징하는 한국의 절임과 발효 미학을 뜻한다. 에드워드는 콜라드그린, 버번위스키, 바비큐 등 남부의 식재료와 조리법에, 된장이나 고추장이나 김치 같은 한국 전래의 장과 발효 기법을 접목한 창조적 요리를 선보인다.
그는 자기 요리 철학을 '비빔'으로 압축한다. 비빔은 재료 간의 연결과 조화, 조리법의 전통과 현재, 문화적 뿌리와 현지 적응의 어울림을 뜻한다. 비빔밥은 각 재료를 볶고 데치고 양념하고 부쳐서 가장 맛 좋은 상태로 만든 후, 이들을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하나의 요리로 합쳐서 새로운 맛을 낸다. 비빔은 요리사의 삶과 손님의 삶을, 대대로 내려온 손맛과 현지의 익숙한 재료를, 낯선 입맛과 오래된 입맛을 융합하면서, 각각의 정체성을 지키고 존중하고 살린다.
그러려면 음식의 마음을 읽는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요리사들의 마음은 세계 어디에서나 같으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 요리와 남부 요리를 관통하는 힘을 알아내 북돋워야 한다. 이럴 때 에드워드는 시인이 된다. 그는 유비를 통해 두 지역 음식에서 같은 점을 찾아내고, 이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잇는다. 가령, 그는 소금과 식초에 절인 콜라드에서 어린 시절 먹었던 양배추김치의 추억을 떠올린다. 콜라드 절임에서 김치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두 음식의 강렬한 풍미를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다. "두 맛은 마치 본래 하나인 것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 덕에 김치는 '동사'가 된다. 배추와의 단단한 결합을 잃고, 그 조리법은 양배추, 토마토, 오이, 무, 굴, 과일과 결합해 혁신적 피클 요리법으로 변모한다. 죽은 그리츠와, 말린 오징어는 육포와, 숯불구이는 남부식 훈연 바비큐와 '비벼져' 새로워진다. "남부 음식은 육류가 주요리이면서 콘 브래드, 피클,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 이는 갈비, 밥, 김치, 나물을 한 상에 놓고 먹는 한식과 비슷하다."
'비빔의 철학'은 오늘날 극단적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된다. 이는 동양의 오랜 지혜이기도 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어울리지만 하나로 만들려 하지 않는 건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가는 가장 좋은 길이다. 에드워드 리의 요리는 우리에게 이를 잘 보여준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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