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핵무기 가질 수 없어"…이스라엘 뒷배 자처

'외교적 해결' 촉구 거부
G7 남은 일정 취소하고 귀국
이란, 美공격불참 전제 협상 재개 의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답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답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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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 묵인하에 확전하고 있다. 전쟁을 중재해야 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비핵화'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뒷배를 자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사태에 대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주요 7개국(G7)의 공동성명 채택을 거부한 데 이어 사태 대응을 이유로 조기 귀국하면서 국제사회와도 파열음을 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밀착 속에서 궁지에 몰린 이란은 미국의 이스라엘 대(對)이란 공격 불참을 전제로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양국 인명피해는 초반 사흘 만에 19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를 방문한 가운데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은 내가 서명하라고 했던 합의에 서명했어야 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인명의 소모(희생)인가"라며 "이란은 하나의 핵무기도 가질 수 없다고 누차 말했다"고 밝힌 뒤 "모두 즉시 테헤란을 떠나라"라고 썼다. 구체적인 수신자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사태를 중재하거나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관망하거나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이날 G7 정상회의 주최국인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이스라엘은 잘하고 있다"든가 "우리는 이란에 60일의 유예기간을 줬다"는 등 이스라엘 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이후 양국 간 '긴장 완화'와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의 G7 정상 공동성명을 거부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서의 남은 일정을 소화하지 않은 채 귀국해 버리는 등 돌발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 간 회담 등 중요 일정도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 이스라엘이 필요하다면 "싸워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중동 갈등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출국 전 백악관에서도 그는 양측에 협상을 촉구하면서도 "때로는 국가들이 먼저 싸워야 한다"고 말해 중재보다는 갈등을 조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최근 사설을 통해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전쟁 중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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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등에 업은 채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화상 기자회견에서 "이란인들은 정권이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를 깨닫는 것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 의지를 드러내며 "(이는) 갈등을 끝내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과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방어와 이스라엘 지원을 위한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AFP통신은 미국이 중동에 항공모함과 공중급유기를 추가 배치하며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압박은 일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날 상호 공격 중단과 핵 협상 재개를 원한다는 신호를 제3국을 통해 이스라엘과 미국에 다급히 보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란 측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 한 미국과의 핵 협상 테이블에 돌아오는 데 열려 있음을 아랍국가 당국자들에게 밝혔다. 미국이 향후 첨단 무기로 이란 지하 핵시설 공격을 지원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란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핵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이란 무력분쟁이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을 경우 핵 프로그램을 가속하고 확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음을 아랍 당국자들에게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당초 미국과 이란은 지난 15일 오만에서 6차 핵 협상을 열기로 했지만 이에 앞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면서 협상은 결국 무산됐다.


한편 전쟁으로 양국의 인명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란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지난 15일 기준 224명이 사망하고 1277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보건부는 사상자의 90% 이상이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에서도 이란의 대규모 공습에 아이언돔이 뚫리면서 14명이 사망하고 390명이 부상을 당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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