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한국투자증권은 '이스라엘·이란 충돌에 대한 리스크 점검' 보고서를 통해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고유가를 유발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전면적으로 확전될 경우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를 공습한 직후 국제 유가는 급등세를 보이며 시장은 지정학 리스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하루 만에 약 7% 상승해 배럴당 73달러를 상회했다. 하지만 16일 현재 상승세가 다소 진정되며 배럴당 72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유가 급등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중동 전면전 우려 등 공급 차질 우려에 기인한다. 미국 국채 금리는 초기에는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일시 하락했으나,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하며 반등세로 전환됐다. 이는 '유가 상승→인플레 우려 확대→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지속 가능성'이라는 연쇄적 반응을 시장이 선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중동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고유가를 유발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이란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을 도울 여력이 적고, 미국과 유럽 등이 확전을 막기 위해 전략적 개입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분쟁이 격화되며 유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준까지 상승한다면 미국에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도 유가 하방 요인이 많다. 미·중 무역분쟁과 트럼프 관세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등 글로벌 성장 둔화 우려가 높아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조짐이 뚜렷하며 공급 측면에서도 5월 이후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OPEC 협의체)는 하루 약 41만배럴을 추가 증산한 데 이어 7월에도 생산 확대 기조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란 갈등이 전면전으로 격화되는 최악의 경우 미국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관세 정책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으로 향후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확대된 상황이다. 이에 더해 지정학적 갈등 확산에 따른 유가 상승 충격은 공급 측 물가 압력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다시 확대된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실물 채널에서 소비 및 투자가 빠르고 과도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Fed가 경계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라는 두 가지 리스크가 모두 확대된 상황에서 향후 기준금리 결정을 위한 Fed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과거 사례를 참고하면 통화 긴축과 유가 상승이라는 외생적 충격의 조합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1980년 이후 발생한 여섯 번의 경기침체 사례 모두 통화 긴축이 선행됐다. 그중 네 번(1980년·1990~1991년·2001년·2020년)은 통화 긴축 이후 부정적인 외생적 충격(전쟁·코로나 등)이 발생했다. 수요 측 물가 압력을 낮추기 위한 통화 긴축으로 실물경제가 취약해진 상황에서는 외생적 충격이 경기의 하방 압력을 보다 크게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엎친 데(트럼프 관세 리스크) 덮친 격(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충격)으로 Fed가 인플레이션 목표와 소프트랜딩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장애물이 더해졌다. 2022년 3월 Fed가 공격적인 긴축 사이클을 시작한 이후 지난 4월 근원 PCE 물가는 전년 대비 2.5%까지 둔화됐다. 2% 목표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미 트럼프 관세 정책이 물가 상방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그동안 디스인플레이션을 진전시켰던 에너지 가격이 상승 전환할 경우 미국의 근원 인플레이션은 연내 3%대 후반까지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기대인플레이션이 반등하는 가운데 뚜렷하게 인플레이션 반등세가 가시화될 경우 Fed는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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