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들의 발길이 다시 미국 증시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장기 채권 비중을 늘리며 방어적 포지션을 잡았던 이들은 또다시 레버리지 상품들을 담으며 공격적인 베팅에 나서는 모습이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13일 기준 미국 주식을 52만3498달러어치 사들이며 이달 첫 순매수로 전환했다. 미국 주식 보관금액 역시 1217억3600만달러(약 166조원)를 돌파하며 지난달 세운 종전 최고기록(1193억2254만달러)을 갈아치웠다.
앞서 서학개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을 확정 지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미국 증시에서 6개월 연속 순매수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S&P500이 35년 만에 최고 월간 상승률을 기록한 지난달엔 차익 실현 매물을 쏟아내며 순매도로 마무리했다. 이달 들어 미·중 무역 협상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안도 랠리를 이어가자 40여일 만에 다시 순매수로 전환한 것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증시 낙관론은 매입 종목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들은 잔존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장기 국채 상장지수펀드(ETF)인 TLT와 TMF를 3억달러 넘게 사들이며 방어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선 테슬라 주식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TSLL(순매수 1위)과 미 ICE 반도체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마이너스 3배로 추종하는 SOXS(순매수 3위) 등 레버리지 ETF들을 다시 담으면서 공격적인 베팅에 나서고 있다. 이 기간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 역시 약 1억1800만달러어치가 매입되며 순매수 2위를 기록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삼천피(코스피 3000)'를 향한 랠리에도 편승하지 않았던 개미들이 미국 증시 비중을 늘리는 것을 보면 아직 '박스피(코스피가 박스권에서 횡보하는 현상)'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증시가 조정 후 반등해 3000선을 두드리면 이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새 정부가 들어선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4조원 넘게 쓸어 담을 동안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코스피 하락에 베팅하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약 2796억원 순매수)'였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내 증시는 물론 서학개미들의 계좌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섣부른 대응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스라엘·이란의 군사 충돌은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기존의 주가 상승 추세를 훼손시키는 대형 악재로 격화될 여지는 제한적"이라며 "오일쇼크, 걸프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면전급 위기 사례를 제외하고 지정학적 쇼크 대부분이 단기 주가 이벤트에 그친 만큼 단기 변동성이 높아지더라도 매도 포지션 확대로 대응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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