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15일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섬뜩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통신장비 제조기업 화웨이가 미국 기업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던 날이다. 그로부터 5일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희토류 자석을 생산하는 공장을 시찰했다. 시진핑 주석의 방문은 "희토류는 미국의 반도체만큼이나 강력한 지정학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6년이 지난 지금,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서 중국은 '희토류 통제'를 무기로 활용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고, 최근 양국은 무역 합의를 맺었다. 이번에 중국이 협상에서 활용한 희토류 자석은 자동차의 전동 시트부터 유도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기의 소형·고성능 모터 제작에 꼭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희토류는 중국이 공급할 것"이라며 중국과의 무역 합의가 체결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가 자랑스럽게 대문자로 쓴 이 문구에는 미국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간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당하자 그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MIC는 2019년 중반 이후 설비 투자에 335억달러, 연구개발(R&D)에 40억달러를 투입했다. 또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화웨이가 매년 250억달러를 연구개발에 쓰고 있다고 밝혔다. 불과 1년 전 중국 정부는 475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 기금을 별도로 조성했다.
물론 미국의 반도체 기술 장벽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올해 초 '딥시크 사태' 수준의 충격이 없다면 아직은 그 요새를 돌파하기 어려워 보인다. 화웨이가 이르면 2026년에 최첨단 기술인 3나노미터급 칩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런정페이 회장조차 "최고 수준의 설계는 아직 미국보다 한 세대 뒤처져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비대칭 전쟁'에서 약자가 승리하려면 상대의 강점을 따라잡으려 애쓰기보다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미·중 기술 전쟁에서 미국의 약점은 바로 희토류다.
강대국 사이의 기술 경쟁은 사실 총칼 없는 전쟁이다.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의 2022년 저서 '칩 워(Chip War)'에 따르면, 냉전 때 미국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반도체 기술 우위였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 우위는 그들의 연산 능력을 압도적으로 정밀하게 만들어 미군을 강력하게 만들었다. 작고 가벼운 반도체를 이용한 순항 미사일은 늘 방향을 잃던 소련 미사일보다 목표를 정밀 타격할 수 있었다.
이처럼 냉전 때 '반도체 혁명'이 있었다면, 이제는 희토류가 그 혁명을 기계 동력 분야에서 재현하고 있다. 희토류는 모터를 더 작고, 강하고,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진화하게 만든다. 그 혁신은 25달러짜리 드론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모터 기술과 리튬이온 배터리 덕분에 우리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순항 미사일처럼, 희토류를 활용해 제작한 모터와 배터리 기술이 미래의 전쟁 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이번 달 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장거리 폭격기 기지를 드론으로 공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미국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에 눈이 멀어, 희토류에 대한 실질적 대응을 거의 못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상당했던 반도체에 수천억달러를 투자했지만, 미국은 희토류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2020년 이후 고작 4억3900만달러의 보조금과 대출을 지원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리튬이온 배터리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전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보조금이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의 전기차 공급망이 붕괴 위기에 놓였다. 이에 2030년까지 미국의 배터리 제조 능력이 최대 75% 감소할 수 있다. 신규 공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배터리 생산 시설이 멈추게 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연간 자동차 판매량의 5분의 1 정도에만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미국은 결국 중국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리튬이온 기술이 적용되는 수많은 핵심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전성기 시절, 미국은 기술 혁신의 최전선을 사수하는 것이 초강대국의 조건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가 기술을 이념에 종속시키려 하면 그 결과는 참담해질 수 있다. 지금 미국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태양광 패널, 리튬이온 배터리, 미래 청정기술 전반에서 주도권을 잡도록 방치하고 있다.
향후 전장에서 미군이 적군의 드론에 맞설 핵심 무기와 배터리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미국은 미래를 외면했던 과거의 선택을 깊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Chips Won the Cold War. Rare Earths May Win the Next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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