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될까봐 '빵공장' 사들였다…신약개발 대신 '장사' 택한 바이오 유망주[바이오 꿈 꺾는 상장규제]①

상장 유지 조건 탓 IPO 3~5년만
신약 대신 제빵·부동산에 '투신'

편집자주신약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자 인내심의 경쟁이다. 적어도 십수 년에 걸쳐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야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불과 3~5년짜리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다. 초기 자금을 모으려면 현실적으로 증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법차손이나 매출액 같은 단순한 수치를 바탕으로 단기간에 이뤄지는 평가 기준을 못 맞추는 경우 시장에서 퇴출되고 미래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K바이오'를 이끌 기술력을 바탕으로 출사표를 낸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전혀 엉뚱한 사업에 매달리며 '장부관리'에 힘쏟는 건 이런 구조의 단면이다. 아시아경제가 이런 현상과 그 원인을 들여다보고 장기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바이오 꿈 꺾는 상장규제]①바이오 유망주인 이 기업은 어쩌다 빵을 팔게 됐을까

[바이오 꿈 꺾는 상장규제]②"27년 꿈 접게 만드는 韓 떠나 美 나스닥으로 갑니다"

[바이오 꿈 꺾는 상장규제]③갈수록 악화하는 대내외 여건, '바이오 새싹' 숨통 조여

[바이오 꿈 꺾는 상장규제]④"R&D 투자, 비용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해야"



면역항암 백신 개발사인 셀리드는 지난해 3월 베이커리 업체 포베이커를 인수했다. 상장 후 연간 매출 30억원을 달성하지 못하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부담에, 당장 매출을 올릴 방편을 찾다가 결국 빵공장까지 사들인 것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셀리드는 2019년 코스닥에 기술특례상장을 한 후 5년 동안 매출액 30억원을 달성하지 못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5년 유예기간이 지나도 매출액 30억원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지난해 셀리드의 매출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2022년 4억8000만원, 2021년엔 9억9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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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율 셀리드 대표는 위탁생산 계약이 무산되면서 목표 매출을 채우지 못하자 "매출을 확실하게 내기 위해 포베이커를 인수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포베이커는 연 매출 40억원대의 제빵기업으로, 이를 흡수 합병한 덕에 셀리드는 올해 상장폐지 관리종목 지정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셀리드만 이런 '기형적 생존 전략'을 택한 것이 아니다. 암 조기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클리노믹스는 지난해 서울 소재 호텔과 스마트팜 버섯 공장을 잇달아 인수했다. 리보핵산(RNA) 치료제 개발사 올리패스는 제약사가 아닌 부동산 투자자로 나섰다. 올리패스는 수원 지역 임대아파트 241가구를 약 717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맺고, 자체 자금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들이 본업을 뒤로 하고 이처럼 '장사'에 나서게 된 건 그러지 않을 경우 증시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클리노믹스는 2020년 말 기술특례로 상장한 이후 최근 2년간 매출이 감소하고 적자가 커져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올리패스 역시 2019년 성장성특례로 상장해 매출은 일정 수준 올렸지만, 최근 3년간 대규모 R&D 적자로 자본잠식이 심화돼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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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에 집중해야 할 바이오텍들이 상장을 유지하려고 이처럼 제빵·호텔·부동한 등 본업과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유형의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현실은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바이오 특례상장 제도의 가혹한 단면이다. 애초 혁신 기업들에 숨 쉴 공간을 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미래 바이오산업을 이끌겠다는 포부로 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들을 기형적인 '부업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평균 10~15년이 걸린다. 그 기간 막대한 R&D 비용의 지출이 불가피하다 보니 매출은 거의 없고 적자가 누적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긴 호흡이 요구되는 바이오산업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한국의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상장 후 몇 년 만에 성과를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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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코스닥 상장폐지 심사 규정에 따르면 일반 상장사는 연간 별도 매출 30억원 미만이거나 최근 3년간 2차례 이상 법차손 규모가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퇴출 수순으로 내몰릴 수 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경우 이 요건을 상장 후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데 법차손 기준은 3년, 매출액 기준은 5년간 적용을 미루어줄 뿐이다.


문제는 상장 4~5년 차부터 이러한 재무 요건을 그대로 적용받게 되면서 상당수 바이오기업이 일제히 퇴출 위기에 놓인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텍의 83%가 상장 후 계속사업손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은 최소 10년 이상을 바라보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우리나라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이를 위한 R&D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경영 리스크에 휘말리게 되는 이상한 구조"라는 하소연이 터져나온다.


기술특례상장제가 처음 도입될 당시 산업 특성에 대한 안배나 고려보다는 재무제표 중심의 회계적 접근이 우선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상장 유지조건의 유예기간이 끝나자마자 성과를 내놓으라는 가혹한 조건이 끝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꿈을 꺾는 사례는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성장성특례 1호로 2017년 상장했던 셀리버리에 이어 표적항암 이중항체 신약을 개발하던 파멥신도 상장폐지 결정이 났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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