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지속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무력 충돌이 국지전에 머물지 않고 중동 전체로 확전할 수 있다는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공급망 혼란, 무역수지 적자 등 다중 위기를 불러온 것과 같은 충격이 다시 한번 한국 경제를 강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오전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동 사태 격화와 관련한 회의를 연달아 열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기재부 주재로 열린 비상대응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향후 사태 전개 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만큼, 금융·실물경제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특이동향 발생 시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하에 신속히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지속하는 가운데 시장이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돼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해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형일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이날 오전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사태 동향과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이 대행은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상황 확대에 대비해 실물경제, 금융시장 동향 주시와 철저한 상황관리를 지시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파장이 실물경제로 번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기업 비용 증가와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국제유가 향방의 최대 관건은 확전 여부다. 이란이 보복 조치로 우리의 원유 수입선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거나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을 공격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의 수입선으로, 전 세계 원유의 약 20%, 해상원유의 약 40%가 이곳을 거친다. 전쟁 발발 전 배럴당 58달러까지 내려갔던 브렌트유의 선물가격(런던 ICE 거래소)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타격한 지난 13일 70달러대 후반까지 치솟으며 80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우리 경제의 핵심 공급망 길목 두 곳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산업계 타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발(發) 관세 직격탄을 맞은 여진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중동에서 전면전까지 터져 2개의 전쟁에 직면할 경우 한국 경제가 입을 피해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우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정이 심화하면서 수출 감소, 무역수지 적자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는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비축유를 방출하고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에너지 수급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수출입·물류 영향 최소화를 위해 중동지역 수출 피해기업 유동성 지원, 물류 경색 우려 확대 시 임시선박 투입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유가 급등은 물가 자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9% 오르며 5개월 만에 1%대로 내려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로 하향 안정화되는 데는 공급 확대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이 주효했다. 유가 급등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정부의 물가경로 예측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달 초 경제전망 발표 때 올해 하반기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를 배럴당 60달러대 중후반으로 전제했다.
대형 불확실성이 추가된 새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앞당기며 경기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물가는 민생과 직결된다. 특히 내수와 민생경기 회복을 위해 20조원 규모 추경 속도전에 나선 이재명 정부 입장에선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걱정을 더하게 됐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실장은 "경기 침체가 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유가 급등 변수가 더해진다고 해도 20조원 추경이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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