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군의 산림이 붉게 물들고 있다. 초록빛으로 우거져야 할 소나무와 잣나무 숲은 지금 고사 직전의 붉은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가평 지역까지 확산하며 산림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온 것이다.
경기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인근 화야산 일대의 잣나무숲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하면서 죽은 나무들이 붉게 변해 숲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종구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15일 가평군에 따르면 가평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잣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2만㏊에 달하는 잣나무 숲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인한 피해가 점차 확산하면서 잣 생산량은 급감, 농가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감염목 3년 새 3배 급증…산림도, 임산물도 '직격탄'
산림청에 따르면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2021년 31만 그루에서 2023년 107만 그루로 3배 이상 급증했다. 2024년에도 90만 그루가 새롭게 감염되며 확산세는 계속되고 있다.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수분 공급이 차단되면서 잎이 급격히 시들고 붉게 변한 뒤 고사한다.
피해는 산림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대표 임산물인 잣과 송이버섯 생산량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잣은 2016년 9600여t에서 2023년 800여t으로 90% 이상 감소했고, 송이버섯 역시 병해충과 기후변화 영향으로 예년의 20% 수준까지 줄어든 상태다.
가평 지역의 한 잣 농가는 "잣나무가 고사해 수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수입 잣과의 가격 경쟁도 되지 않아 생계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방제 총력에도 제약 많은 가평…"항공방제 불가능한 지역"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가평군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약 29억원의 예산을 들여 긴급 방제에 나섰다. 고사목 1만2424그루를 제거하고, 주변 산림 152.6ha에 예방주사를 투약했다. 드론과 항공사진을 활용한 정밀 예찰 체계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가평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수도권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항공방제가 사실상 금지돼 있다. 여기에 양봉업자들의 반발도 있어 약제 살포 등에도 제약이 따른다.
가평군 관계자는 "재선충병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어, 감염목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긴급 방제뿐 아니라 건강한 산림을 회복하기 위한 수종 전환과 장기 전략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종 전환, 근본 해법 될까…전문가 "지역 맞춤형 전략 필요"
정부와 각 지자체는 재선충병에 강한 편백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으로 수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교체만으로는 임산물 생산, 생태계 복원, 지역 경제 유지 등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산림청 관계자는 "숲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는 생태적 특성과 지역 경제성을 모두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며 "단기적 방제와 병행해 지속 가능한 조림 정책과 장기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인근 화야산 일대의 잣나무숲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고사하면서 죽은 나무들이 붉게 변해 숲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다. 이종구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숲이 죽어간다"…조용한 재앙에 지자체 '속수무책'
산림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방제에는 여러 제약이 존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요원한 상황이다.
가평군은 현재 재선충병이 초기 집단 피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긴급 방제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산림을 회복하기 위한 수종 전환과 방제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붉게 변한 숲이 전하는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생태계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까지 위협하는 이 '조용한 재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