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뒤에 숨은 700명의 사람 직원…MS도 속은 스타트업 [테크토크]

개발 하청을 AI로 속인 스타트업 파산
AI 과잉 기대감, 빅테크도 속아 넘어가
“테크 업계, 허술한 AI 홍수처럼 쏟아내”

한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인공지능(AI) 앱 개발 스타트업 '빌더 AI'가 지난달 파산했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MS), 카타르 투자청 등 글로벌 투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이 회사는 그동안 매출과 기술력을 부풀려 왔다는 게 드러났지요. 사업의 핵심인 AI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인도인 개발자 700여명이 AI로 가장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사친 데브 두갈 빌더 AI 창업자(좌)와 빌더 AI의 로고. 인스타그램, 빌더 AI 홈페이지 캡처

사친 데브 두갈 빌더 AI 창업자(좌)와 빌더 AI의 로고. 인스타그램, 빌더 AI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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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AI는 인도계 영국인 사업가 사친 데브 두갈이 2016년 창업했습니다. AI로 스마트폰 앱 개발을 자동화해 글로벌 테크 업계의 주목을 받은 회사였습니다. 2023년 MS는 카타르 투자청 등과 함께 이 기업에 4억5000만달러를 투자했고, 빌더 AI는 단숨에 유니콘(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회사는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창업자 두갈은 지난 2월 금융 부정 의혹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난달 20일엔 회계 조작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빌더 AI는 영국 기업등록소에 제출하는 매출 자료를 수년간 부풀려 왔다고 합니다.


이후 블룸버그 등 여러 외신은 빌더 AI에 몸담았던 전 직원들과 인터뷰했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빌더 AI엔 '앱 만들어주는 AI'가 없었습니다. 주문 받으면 인간 개발자가 수작업으로 앱을 만들어 고객에 전달하는 형태였습니다.

AI라더니…홈페이지 뒤에 사람 있었다

빌더 AI의  실제 서비스 화면.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홍보와 달리, 수일 이상의 개발 일정이 걸리는 등 제약이 많다. 빌더 AI 홈페이지

빌더 AI의 실제 서비스 화면.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는 홍보와 달리, 수일 이상의 개발 일정이 걸리는 등 제약이 많다. 빌더 AI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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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AI는 영국에 본사를, 인도에 개발 지부를 두는 형태로 운영됐습니다. 특히 인도에는 700명 넘는 개발자가 고용돼 사실상 핵심 사업장이었지요. 고객이 앱 개발 AI인 '나타샤'에 특정한 앱을 주문하면, 인도 개발자들이 6~7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완성품 앱을 만든 뒤 고객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코드 자동화 AI로 보통 1~3분 안에 완성품을 만드는 것과 대조됩니다.


즉, 빌더 AI는 AI 기업이 아니라 앱 개발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겁니다. MS, 카타르 투자청은 최첨단 AI가 아닌 인도 개발자 700여명에 거액을 투자한 셈이지요.

빌더 AI처럼 허위 광고를 한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아마존도 자사 AI 기술력을 과도하게 부풀렸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습니다. 마트에서 구매할 물건을 골라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결제 처리되는 '아마존 고'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은 한때 아마존 고가 AI 기술을 통해 자동화됐다고 주장했지만, 지난해 4월 미국 기업 관련 매체 '인포메이션'의 보도를 통해 그 실체가 탄로 났지요.


상품을 고르면 AI가 자동으로 인식하고 결제 처리한다며 홍보된 아마존 고 기술 광고 영상. 아마존 유튜브

상품을 고르면 AI가 자동으로 인식하고 결제 처리한다며 홍보된 아마존 고 기술 광고 영상. 아마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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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고는 마트 안에 설치된 각종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고객 정보를 확인한 뒤, 해당 고객이 고른 물품을 자동 결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 AI를 활용하긴 하지만, 오류와 실수 때문에 실제 자동화 수준은 낮았습니다. 결국 아마존은 아마존 고의 결제 정보를 확인하는 사람 직원을 추가 고용했습니다.

허술한 기능 쏟아내는 업계…"AI, 만병통치약 아냐"

빌더 AI, 아마존 고 실패 사례는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금물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둘 다 생성형 AI에 대한 기대감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막대한 투자를 유치한 프로젝트였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초라했지요.


글로벌 테크 업계가 이번 사건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영국의 테크 전문 매체 '레지스터'는 "스타트업의 세계에선 유명한 회사도 실패할 수 있다"면서 "기업들은 AI에 얼마나 의존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현재 테크 업계는 허술한 AI를 포장한 다양한 기능을 홍수처럼 쏟아내는 중"이라며 "물론 진짜로 작동하는 기능도 있고, AI는 유용한 도구임이 확실하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AI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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