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조원 vs 5조8000억원.'
온라인 자동차 구매의 글로벌과 국내 시장 규모를 비교한 수치다. 시장 조사기관 코히런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온라인 자동차 구매 시장 규모는 3289억달러(약 450조원)로 추산된다. 온라인 판매 시장은 향후 연평균 12.5% 성장, 2031년에 7518억달러(약 1029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국내 온라인 자동차 판매 현황을 살펴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동차(자동차용품 포함)의 온라인 거래 규모는 5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450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1.2%에 그치는 수준이다. 전체 온라인 상거래 규모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영국, 일본에 이은 세계 5위(2024년 240조원)다. 하지만 자동차 거래로 범위를 좁혀보면 아직 국내 자동차 온라인 거래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온라인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왜 유독 온라인 자동차 판매 시장만 더디게 성장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원인은 현대자동차,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온라인 판매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제조사가 영업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와 거래하는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 현장 영업직원의 역할과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자동차 판매 방식은 노사 협약에 따라 노조와 협의해야 하는 사안이다.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온라인 판매를 추진하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의 경우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위탁 생산한 차종이기에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0% 온라인 판매를 강행할 수 있었다.
현대차· 기아 내수 시장 점유율은 2024년 기준 76%에 달한다. 국산차 기준 점유율로만 보면 90%가 넘는 사실상 독점 사업자로, 현대차·기아의 판매 정책이 국내 자동차 시장의 거래 동향 및 관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온라인 판매에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국내 온라인 자동차 판매 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동차 온라인 거래에서 소비자의 신뢰나 구매 경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에서 자동차는 주택 다음 가는 고가품이다. 직접 물건을 만져보거나 시승해보고, 영업사원과 대면 상담을 통해 충분한 신뢰를 쌓은 이후에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이 같은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최대 온라인 자동차 거래 시장인 미국은 제조사와 딜러(영업점), 온라인 플랫폼이 혼합된 형태의 온라인 생태계를 조성하며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비자가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해 각 딜러사의 재고 현황, 가격, 서비스 등을 비교해서 원하는 딜러사를 선택하면, 조건에 맞는 딜러가 매칭돼 1대 1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딜러의 역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구매 과정에서 디지털 경험을 높이는 형태로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 사원은 어떻게 수익을 남길까? 기존 국산차 영업점 기준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다. △판매 수당 △보험 중개 금융사 수수료 △부가 수수료다. 차를 팔 때마다 영업직원은 정해진 판매 수당을 받는다. 직영점의 경우 기본급이 높은 대신 대당 판매수당이 낮고, 대리점은 기본급이 낮고 대당 판매수당이 높게 책정된다. 자동차 보험 등을 주선해주면서 얻는 금융 수수료가 있고, 틴팅이나 블랙박스 등 부가 시공 옵션을 정해진 업체와 진행하도록 유도해 받는 중개 수수료도 있다. 여기에 고객이 기존에 타고 있던 중고차 매각을 중개해주는 대가로 또 일정 수준의 중개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모든 과정에서 영업사원이 받아가는 수수료를 줄이면 소비자에겐 혜택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등록이나 세금 납부 등 오프라인 등록 절차를 대행해주거나, 복잡한 국산차의 옵션을 함께 고민하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사원의 노고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중간 수수료를 절약하고 싶은 소비자라면 온라인 판매가 훨씬 이득이다.
현대차그룹도 이 같은 수요를 확인하고 부가 서비스에 부분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온라인 편집숍 '제네시스 부티크'를 통해 신차 틴팅, 프리미엄 코팅 및 세차, 타이어 교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원하는 브랜드와 시공업체를 온라인에서 비교해보고 직접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 영업사원을 거쳐 연계 시공을 했던 틴팅 서비스 등을 온라인 플랫폼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를 통해 소규모로 온라인 판매 구조를 시도해보면서 시스템의 안정성 및 소비자의 반응을 테스트해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소형 SUV 캐스퍼 판매를 통해 온라인 판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현대차·기아를 통틀어 100%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차종은 현재까지 캐스퍼가 유일하다. 캐스퍼는 GGM 광주공장에서 위탁생산된다. 캐스퍼의 온라인 판매 역시 노조가 꾸준히 반대해왔지만 울산공장 노조가 직접 생산하는 차종이 아니기에 노사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덕분에 온라인 판매 추진이 가능했던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소형 SUV는 수익성이 낮은 차종이기에 유통 과정 수수료를 최소화한 '박리다매' 전략이 필요했다. 캐스퍼는 가격대가 낮고 옵션도 비교적 간단하기에 소비자의 온라인 접근성도 좋다. 디지털 경험에 익숙한 20·30 소비자들이 타깃층이라는 점에서도 온라인 구매에 최적화된 차종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9월 출시된 캐스퍼의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절정에 달하면서 비대면이 모든 산업의 주요 트렌드가 됐다. 현대차는 온라인에서 차량 정보 제공은 물론 3D 모델링 기술을 접목한 사양 조합, 실시간 견적, 계약, 결제, 차량 등록까지 모든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 과정에서 카카오톡이나 공동 인증서 등 간편 인증을 도입하고 계약 변경이나 취소, 할부 한도 조회, 전용 카드 발급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클릭 한 번에 차를 계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캐스퍼의 사전 계약 첫날에만 1만8000대가 넘는 접수가 몰렸다. 이는 당시 현대차의 내연기관 차종 사전 계약 첫날 대수 중에서는 역대 최대였다. 계약 2주 만에 연간 생산 예정 대수인 4만5000대를 거뜬히 채웠다. 이후 캐스퍼는 3년 연속 연간 4만대 이상 팔리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캐스퍼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팬덤을 만드는 마케팅'이다. 제품력이나 브랜드가 애매할 경우 영업사원의 지원 사격이 필요한 법이다. 이 차가 어떤 성능이 좋고 경쟁차에 비해 어떤 강점이 있는지 등을 누군가가 나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브랜드나 차종, 그 자체만으로 팬덤을 형성하면 영업사원의 첨언이 없어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테슬라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테슬라는 브랜드 철학과 기술 리더십, CEO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독특한 팬덤을 만들었다. 테슬라는 초기 모델부터 전 모델을 100%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미국 시장이 전 세계 자동차 온라인 구매에서 가장 먼저 앞서갈 수 있었던 것도 테슬라의 공이 컸다.
현대차는 캐스퍼 역시 테슬라 같은 팬덤을 만들기를 원했다. 영업사원의 판촉 활동 없이 오로지 온라인 마케팅만으로 캐스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적극적인 전략을 짜야 했다. 우선 온라인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 부산, 제주 등 곳곳에 팝업 스토어 형식의 매장을 마련했다. 단, 별도의 영업사원은 없으며 고객 상담도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이곳에서 차량을 직접 만져보거나 타보고 이후에 주문은 온라인으로 한다. 전용 방송 채널 '캐스퍼 TV'를 통해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 도중 궁금한 점은 챗봇을 통해 묻고 해결할 수 있도록 실시간 소통 채널을 마련했다. 적극적인 온라인 광고도 병행했다. 최근 현대차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 공식 계정에 올라온 광고만 봐도 캐스퍼의 비중이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차 는 온라인 자동차 판매에서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또 다른 혁신 실험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현대차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마존에서 검색-구매-결제-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한 완성차 브랜드는 현대차가 최초다. 아마존 사이트에서 자신의 우편번호를 입력하고 원하는 차종, 사양 등을 검색하면 가장 가까운 딜러십에 있는 보유 차종 현황이 나온다. 여기서 소비자는 가격과 옵션, 할부 조건, 딜러 수수료 등을 비교해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결제와 등록까지 마치면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차를 찾아오면 된다. 원하면 집 앞까지 배송도 해준다.
현대차 입장에선 3억명이 넘는 아마존의 방대한 고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온라인으로 잠재 고객의 접점을 넓히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일 수 있다. 또한 아마존 플랫폼의 투명한 가격 공개, 실시간 재고 확인, 비대면 거래의 편의성 등을 강조하며 소비자 구매 경험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협업 모델이 가능했던 이유는 딜러와의 상생 방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아마존 판매를 통해 제조사의 직접 판매가 아닌 딜러십을 경유한 온라인 판매 모델을 구축했다. 딜러가 자신의 재고 차종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면 소비자를 매칭해주는 방식이다. 딜러사 입장에서도 보다 많은 소비자에게 재고 현황을 노출함으로써 재고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고, 소비자는 원하는 차종의 조건을 광범위하게 비교할 수 있다.
물론 현대차 국내 유통망의 경우 딜러사 없이 제조사의 직접 판매가 주를 이루기에 미국과 상황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제조사, 영업사원,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국내 역시 현실적인 절충안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확대해 나간다면, 대한민국이 자동차 온라인 판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대차와 아마존이 지난 2023년 뉴욕 오토쇼에서 고객 경험 혁신 및 클라우드 전환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와 마티 말릭 아마존 글로벌 기업 비즈니스 개발 담당 부사장이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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