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자에게 듣는다]⑮"전략광물 회수율 99%로 中에 맞선다"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
아연·연·동 통합공정…회수율 99.99%
글로벌 전략광물 공급 불안 유일한 '해결사'
中독점 막으려면 "법으로 기술·산업 보호해야"

편집자주한국 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이 겹쳐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결국 기술이다. 기술은 기업의 생명줄이자 존재 가치다. 기업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CTO는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을 분석해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CTO를 만나 각 산업이 주목하는 핵심 기술과 차별화 전략을 들어봤다. 주요 기업의 기술 전략을 통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한다.
"중국이 원료의 70%를 생산한다면 우리는 90%, 그 이상을 회수해 경쟁력을 갖추는 게 전략입니다. 중국과도 충분히 붙어볼 만합니다"
지난 11일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지난 11일 김승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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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울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만난 김승현 제련소장(부사장)은 '중국이 전략 광물의 원료 생산을 장악한 상황에서 어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소장은 "국내 기업이 중국과 원가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렵다"며 "우리는 결국 기술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중국보다 높은 회수율로 정면 승부할 것"이라고 했다.


'회수율을 올린다'는 건 금속 제련의 본질을 다루는 일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연·연(납)·동(구리) 3대 금속을 통합 공정으로 제련하는 회사다. 아연 정광 속에 섞여 있는 금·은·비스무스·인듐 등 귀금속과 희소금속까지 빠짐없이 추출한다. 그 범위만 해도 10여종에 달한다. 김 소장은 "보통 아연 제련소의 회수율은 85% 수준이지만, 아연은 98%, 연은 99%까지 끌어올렸다"면서 "거의 100%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고려아연이 독자 개발한 잔재 처리 공정, 이른바 '퓨머 공법'이 있다. 제련 부산물에서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이 기술은 기존 공정 대비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여기에 'TSL'이라는 비철금속 제련 공정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 기술을 통해 고려아연은 제련 부산물에서 귀금속과 전략 광물을 모두 회수할 수 있게 됐다.


김 소장은 "황산 조건, 가압 리칭 조건, 고온·고압 조건 등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실험해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회수율 향상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연 부산물 처리 공정도 처음엔 가동률이 40~50%에 그쳤지만, 수십 차례 공정을 개선해 95%까지 끌어올렸다"며 "그만큼 원가도 크게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략 광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고려아연의 경영전략은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지난해부터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인듐, 갈륨, 안티모니 등 전략 광물에 대해 수출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방산 산업의 핵심 원소인 이들 금속은 소량만 있어도 부가가치가 크고, 특정 국가에 의존한다면 산업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김 소장은 "안티모니나 인듐, 텔루륨은 예전부터 정광에 미량 들어 있었지만 대부분 버려졌다"며 "우리는 회수율이 낮더라도 계속 연구를 해왔다"고 했다.

고려아연은 올해부터 인듐·비스무스·텔루륨 등 주요 희소금속의 회수율을 품목별로 20~30% 더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안티모니는 이미 상용 플랜트에 투자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김 소장은 "당장 오는 7~8월부터 지금보다 회수율이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잠정적으로 계획했던 목표치도 120% 이상 더 생산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고 했다.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전략광물 중 하나인 안티모니 괴가 적재된 모습. 심성아 기자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전략광물 중 하나인 안티모니 괴가 적재된 모습. 심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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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수율 향상이 곧 수익성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비스무스는 500~600t 수준에선 가공비나 제조비, 판매 비용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1000t 이상 생산하고 가격이 3~4배 올라가면서 70% 이상 수익률이 남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아연 정광에서 들어오는 부산물로 인듐을 생산한다"며 "미·중 갈등 등의 영향으로 세계 공급가격이 올라가 고려아연 의 주요 제품보다 더 이익을 많이 남기는 '효자 종목'이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금속들은 대부분 전자산업과 방위산업에 소량씩 투입된다. 김 소장은 "전 세계가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줄이려는 만큼, 고려아연 같은 회수 전문 기업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긍정적인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고려아연은 친환경 공정 기술을 고도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도시 쓰레기에서 금속을 캐내는 '도시광산'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2년에는 미국의 전자폐기물 전문 수거·처리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그니오가 수거한 폐기물은 한국으로 들여와 온산제련소에서 다시 금속으로 재탄생한다. 전량 100% 순환자원 기반이다.


김 소장은 "폐배터리에서도 니켈, 코발트, 망간 모두 추출하는 기술은 이미 확보했다"며 "시장만 형성되면 즉시 설비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술 보호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전략 광물 산업이 무너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를 독점하게 된다"며 "기술자들이 목숨 걸고 연구하고 있지만, 그들의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이 되는 광물 산업을 지키기 위해선 법과 제도를 통한 기술 보호 장치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울산=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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