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트럼프 감세안, 美경제 뇌관 되나…"문제의 본질은 정치"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상원 계류 중
美국채 신뢰 예전만 못해…"적자 임계점 넘었다"
"부채 문제 해결, 트럼프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감세안으로 인해 미국의 재정 적자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과 학계에서는 미 국채의 신뢰가 추가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재정 악화와 부채 논란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공화당이 촉발한 분열된 정치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려 쏟아지는 트럼프 감세안…"美 '부채 폭탄' 불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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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공약 이행을 위한 핵심 세제 법안이 미 연방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2017년 시행돼 올해 말 종료되는 주요 감세안을 연장하고 부채한도를 5조달러까지 늘리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One Big Beautiful)'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 법안을 미국 독립기념일인 다음 달 4일까지 상원에서 통과시킨 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쳐 입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미국 경제에 이미 부담을 주고 있는 정부 재정 적자가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이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향후 10년간 미국의 재정 적자가 추가로 2조4000억달러(약 3300조원)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작은 정부와 건전 재정을 주장하는 '정통보수' 랜드 폴 상원의원은 법안에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론 존슨 상원의원도 법안을 "부도덕하다"고 평가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퍼스트 버디(first buddy·1호 친구)'로 불렸으나 최근 갈등을 키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감세 법안에 대해 "미안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 이 터무니없고 낭비로 가득 찬 예산안은 역겹고 혐오스럽다"면서 "감세안은 거대한 규모의 재정 적자를 급증시킬 것이며 미국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채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4일 트루스소셜에 "경제적 재앙을 막기 위해 (연방) 부채 한도는 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채 한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과 전 세계에 끔찍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빌릴 수 있는 금액에 상한을 두는 '부채 한도'를 설정해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의회예산국은 지난 9일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가 오는 8월 중순에서 9월 말 사이에 소진되면서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 국채 신뢰 흔들려…"美 재정, 더는 버틸 수 없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이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요 정책이 담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연합뉴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이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요 정책이 담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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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미국의 재정 적자 수준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간 재정 여력을 떠받쳐온 미 국채의 신뢰도가 추가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투자은행 라자드의 피터 오재그 CEO는 "그동안 미 국채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자산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적자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에 연방 부채한도 논쟁이 가끔 벌어져도 시장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올해는 국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국방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및 메디케어(노인 건강보험)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즉, 이자 갚는 데만 주요 필수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재그 CEO는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미 국채에 투자했던 그간의 상황이 이제부터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 국채를 많이 보유한 국가와 외교 관계가 급변할 수 있고,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가 국방·인프라에 추가 투자를 하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한다면 미 국채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며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최근 미 국채 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일부 주요 기관투자자가 미 국채를 줄이고 다른 국가의 국채로 갈아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간 미 국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던 대만과 일본의 보험사, 호주의 연금 펀드 등이 미 국채를 팔고 최고 신용등급(AAA)을 보유한 호주와 싱가포르 국채를 담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최상위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호주와 싱가포르를 포함해 덴마크·독일·룩셈부르크·네덜란드·노르웨이·스위스 등이 있다. 미 국채의 신뢰도 하락에 의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 '큰손' 투자자 입장에서 미 국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충분히 존재하는 셈이다.


공화당의 현실 외면…"정치 분열이 문제 해결 가로막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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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감세와 재정 악화, 부채 논란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은 정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 경제사 연구의 대가로 평가받는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금의 진짜 문제는 정치"라며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고 있고 부유층이 돈을 잘 벌고 있음에도 보수 정당은 정부 재정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미국 정치가 명확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재정 정책의 방향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투즈 교수는 "시장은 세수 확대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공화당이 만들어 낼 막대한 재정 적자에 주목하고 있다"며 "2017년 공화당의 감세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았는데도 무리한 감세를 시행해 적자가 폭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세계대전 등 위기 상황에서 급증하는 부채를 갚지 못하고 방치했을 때 결국 혁명이나 초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마치 (전황을 왜곡하며 패배를 부정했던) 사담 후세인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는 감세안을 강행하는 것은 미국이 처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미국의 정치 분열이 부채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미국 정부의 부채가 엄청난 액수인 것은 맞지만, 사실 이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지속가능 하게 관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핵심은 정치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라며 "이때 '정치적 어려움'이란 미국 정치의 극심한 분열을 의미한다. 2017년부터 이어온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안을 연장할 경우 재정 전망이 더 나빠짐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은 거의 없다"고 짚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부채 문제 해결 여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치가 극단화하면서 기능을 상실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연방정부 부채 우려보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드는 공화당의 급진화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하원 공화당은 미국 국세청(IRS) 예산까지 삭감하려고 하는데, 이는 부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수단을 없애겠다는 의미"라며 "그들은 겉으로는 재정 적자를 걱정한다고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세금 징수를 막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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