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개벽했죠.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습니다."
지난 12일 충남 천안 한서정공 생산 현장에서 만난 김수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생산 설비를 둘러보던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서정공은 최근 몇 년 새 생산 시스템을 전면적인 스마트 제조 방식으로 뜯어고쳤다. 작업지시는 고도화된 제조실행시스템(MES)을 통해 실시간 전달되고 조립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본떠 정비됐다. 자재를 조립 라인별로 배치하는 '키팅(Kitting)' 방식도 적용했다. 단계별 공정 현황 등 생산과 관련한 대부분의 작업 정보가 모니터로 실시간 공유됐다.
2022년만 해도 한서정공의 생산 방식은 일명 '유목민' 형이었다. 직원들이 조립 중인 차량을 따라 몰려다녔고, 자재도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다. 이에 납기 지연과 자재 혼선, 공정 간 불균형이 심각했다. 당시 특장차 일평균 생산량은 0.9대, 연매출은 352억원, 영업이익은 7억원에 불과했다. 하루에 한 대도 못 만드는 생산성과 납기 대응 능력 모두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전환의 계기는 중소벤처기업부·삼성전자 등이 공동 추진하는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지원 사업'이었다. 자금 지원과 삼성전자의 멘토링 지원을 바탕으로 2023년 맞춤형 스마트공장 구축에 착수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멘토들이 많을 땐 20명씩 상주하며 3개월간 밀착 지원을 했다는 게 김 COO의 설명이다. 그 결과, 유목민형이었던 생산 체계가 '흐름 중심 스마트 생산 체계'로 탈바꿈했다.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일평균 생산량은 50%가량 증가했고 제조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36% 줄었다. 재고관리의 정확도는 104%나 향상됐다고 한다. 이런 변화에 힘입은 한서정공의 지난해 매출은 436억원, 영업이익은 14억원으로 불어났다. 직원 수도 70명에서 80명으로 늘며 고용이 크게 개선됐다. ICT 활용도에 따라 스마트공장은 기초, 중간 1~2, 고도화 등 네 단계로 나뉘는데 이 기업의 스마트공장 수준은 '중간 2단계'에 해당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서정공이 삼성의 노하우를 매뉴얼화해 지적자산화했다는 것이다. 특장차에 적용된 신생산 방식은 현재 소방차·농기계 등 전체 제품군으로 확대했다. 최근엔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한 추가적인 설비 고도화에 착수했다. '제조의 미래'라고 하는 자율제조 시스템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한서정공의 변화는 정부의 정책지원과 대기업의 기술지원이 어우러져 일궈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업계 안팎에서 손꼽힌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이런 사례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 구축 및 자율제조 체계로의 전환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제1차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공장을 보유한 중소·중견 제조기업 16만여곳 가운데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비율은 18.6%에 그쳤다. 10곳 중 채 2곳도 도입하지 못한 셈이다.
스마트공장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는 낮지 않다. 202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스마트팩토리(공장)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36.6%는 스마트공장 전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보통이다'는 42.8%, '동의하지 않는다'는 20.6%로 가장 적었다. 생산량 증가(68.0%), 가동률 향상(68.8%), 불량률 감소(61.0%) 등 기대 효과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전환비용 부담'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스마트공장 구축에는 평균 11억3000만원, 중소기업도 7억5000만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기초단계 5000만원, 중간 1단계 이상 최대 2억원에 불과했다.
최근 중기부는 스마트공장 정책 기조를 '양적 확대'에서 '질적 고도화' 중심으로 전환했다. 이는 대중소 상생형 사업 등을 통해 스마트공장 3만개란 양적 목표는 달성이 됐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이뤄지던 기초적인 스마트공장 도입 관련 자금 지원은 다소 오그라드는 흐름이다. 고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 기반 분석·예측과 실시간 제어가 가능한 자율제조 체계로의 전환이 지연될수록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정부의 판단에도 나름대로 근거는 있지만, 아직은 양적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장기적인 자율제조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자율제조를 유도하기 위한 기초체력의 증진이 여전히 긴요하다는 것이다.
박정수 성균관대 스마트팩토리융합학과 교수는 "3만개 스마트공장의 평균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자꾸 스타 플레이어를 골라내려는 방식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건 3만개가 아니라 30만개의 기초 스마트공장"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상생형 사업 등을 통해 기초 수준이라도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직접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경험이 쌓이면 기업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후 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기초 단계를 경험한 기업 가운데 일부는 펀더멘털이 튼튼해져 정부 도움 없이도 고도화로 나아갈 수 있다"며 "그게 기업가 정신이고 진짜 자율제조"라고 말했다. 기초의 저변 확대가 자생적 혁신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김수영 호서대 AI스마트팩토리융합공학과 교수 역시 "너무 빨리 가고 있는 듯하다. 걷지도 못하는데 하늘을 날라고 하는 셈"이라며 스마트공장 정책이 고도화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한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이어 "기초 단계에서 아날로그·디지털 융합 기반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채로는 고도화의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아울러 산학연 협력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초 시스템을 경험한 기업들이 기술을 이해하고,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도입할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각 거점 대학별로 기업들에 산학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이런 애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두 교수는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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