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인사이트]기재부 쪼개기? 도대체 왜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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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대선 공약에서부터 기획재정부 쪼개기와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정부조직 개편을 예고했다. 당장 경제 현안을 우선시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우선순위에서는 좀 밀린 듯하지만 추진 방침은 확고한 것 같다.


경제정책은 크게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으로 나뉜다. 거시는 재정정책(예산·세제)과 통화정책(기준금리), 미시는 여러 세세한 정책들이 있겠지만 큰 것은 금융정책이다. 맨 위에는 경제총괄, 즉 경제기획(전략)과 부처 간 정책조정 기능이 있다.

▲경제기획원 / 재무부(노태우 정부까지)는 경제총괄·예산 / 세제·금융 ▲기획예산처 / 재정경제부(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예산 / 경제총괄·세제·금융 ▲현 기획재정부 / 금융위(이명박 정부 이후)는 경제총괄·예산·세제 / 금융 등으로 권한이 분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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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정경제원(김영삼 정부)은 경제총괄·예산·세제·금융이라는 주요 경제정책을 모두 가진 공룡부처였다. 1997년 12월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한은의 독립성이 확보되기 전까진 사실상 통화정책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모든 경제권한을 다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권한이 분리돼 있을 때와 달리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거론되는 기재부 쪼개기도 연원을 따져보면 재정경제원 해체다. 기재부 쪼개기의 연원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는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 부처 간 권한이 어느 정도 분산돼 있어야 어떤 사안에 대해 부처끼리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싸우기도 하면서 좀 더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게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게 한은의 독립성 확보다. 과거 한은은 재무부(재정경제원 포함)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1998년부터 한은의 독립성 확보로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이 됐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기재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장관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환율 정책(원화 평가절하)을,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또는 금리 인상 불가를 주장했다. 이 때문에 강 장관은 번번이 이성태 한은 총재와 갈등을 빚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을 불러와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데, 물가안정이 제1목표인 한은으로선 기재부 뜻대로 할 순 없었다. 환율(외환정책)은 최종 권한이 기재부에 있어 어쩔 수 없었지만, 기준금리는 한은이 독립적으로 결정했다.


반대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지나친 고금리 정책이 문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기업구조조정(부채 축소 등)과 외환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강요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멀쩡한 기업까지 다 죽어나간다며 IMF에 금리 정상화를 강력히 설득하기로 했으나, IMF의 방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한은은 처음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치열한 논의를 거쳐 IMF와 재협상에 나섰고 그게 타결돼 1998년 1월 연 24%에 달했던 시장금리(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기준)가 그해 9월에는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연쇄도산을 끊어낼 수 있었다.


강만수 장관이 이명박 정부 초기에 글로벌 은행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메가뱅크(산업은행·기업은행·우리은행 합병)는 민간금융의 자율성 훼손과 대형 국책은행의 부작용을 우려한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런데 지금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떼어내자는 것은 어떤 '견제와 균형'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재부가 국회의 예산 증액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서? 예산을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그건 국회와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또는 기재부가 너무 뻣뻣하고 안하무인이어서? 다른 부처들의 기재부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으나 그건 기재부 쪼개기의 논리로는 부족한 듯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과 환경부를 합쳐 기후에너지부를 만들겠다는 것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시하는 처사다. 국가의 에너지 대계를 설계하고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도록 진흥해야 하는 산업부와 환경을 위해 화석연료를 규제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환경부를 통합하면 어느 쪽이든 한 목소리만 나올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할 때다.

마지막으로 최근 만난 전직 기재부 고위 관료의 말로 글을 마친다.


"재정경제원 체제에 대한 타산지석으로 예산, 세제, 금융을 한 부처에 둘 수 없다는 건 명확해진 것 같다. 그중 뭘 떼어내야 할지의 문제다. 정권마다 기조와 방향이 있고, 현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까 개편하자고 하는 것인데 그건 좋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해야 한다.


부처 분리의 비용은 단순히 인사, 총무, 국회 담당, 대변인실 등 부처마다 공통으로 있는 부서의 인력이 추가로 늘어나는 것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비용도 있다. 이미 아래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사무관·과장·국장·차관보·차관·장관) 부처 간 업무 파트너가 있고, 구축돼 있는 일하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한 부처가 쪼개진다면 그 업무 파트너와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다시 구축해야 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정재형 세종중부취재본부장·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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