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기부 허용…고향사랑기부제 문제 해법 될까[새정부 정책현안]

李정부, 제도 개선 공약
지방재정 확대 기대 속
기업에 '기부' 압박 논란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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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고향사랑기부제 개선을 국가균형발전 과제로 검토하면서, 제도 전면 손질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 공약에 포함된 '법인 기부 허용' 방안이 실현될 경우 제도의 외연은 넓어지겠지만 기업에 대한 '반강제적 기부 압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자발성과 투명성,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고향사랑기부제 개선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법인의 고향사랑기부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이 연간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기부금은 전액 해당 지자체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사용하도록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출 내역과 성과를 외부에 공개해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3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개인이 자신의 주민등록지 외의 지자체에 연간 최대 500만원까지 기부할 수 있고, 기부자는 세액공제와 지역 특산물 등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 기부금은 지자체의 주민복리 증진 사업에 활용된다.


이 제도는 도입 초기엔 지방소멸 대응책으로 주목받았지만 시행 2년 차에 접어든 현재 여러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지자체 간 기부금 편중이다. 2024년 기준 상위 30개 지자체의 모금액은 하위 30개 지자체의 21배에 달했다. 유명 관광지나 특산물 보유 지역에 기부가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졌고, 열악한 지방일수록 기부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부 지자체는 수입 농산물을 답례품으로 내세우는 등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 기부 허용은 기부 저변 확대를 통한 재정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동시에 기부의 자발성과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지역 정치권이나 지자체로부터의 '은근한 요청'이 반복될 경우 사실상 기부가 아닌 부담금에 가깝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개발사업, 인허가, 협약 체결 등을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기부가 전제가 된다"는 인식이 생기면 제도 전반의 공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행정 분야 전문가는 "지자체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지역 내 중소기업 입장에선 '기부하지 않으면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자율성은 무너진다"며 "이런 인식이 퍼지면 고향사랑기부제가 과거 '지역발전기금' 논란처럼 정치적 거래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일부 지자체에서는 특정 기업에 상생발전기금 형태의 기부를 유도하거나, 유사 부담금을 조건으로 요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거제시에서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사에 매년 100억원씩 5년간 총 1500억원을 공동 출연, 지역 상생발전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가 시장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한 일도 있었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기부 요청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과 기부 내역의 공개 및 실시간 열람 시스템, 기부 집중 방지를 위한 지자체별 모금 한도제 도입 등을 제도적으로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이재명 정부가 공약에서 함께 제시한 주민참여예산 연계 방안도 과제로 지목된다. 예산 결정 과정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구조는 취지상 긍정적이지만, 실질적인 참여가 제도화돼 있지 않거나 역량이 부족한 기초지자체의 경우 형식적 운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기부금의 활용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문제도 있다. 현행 법령은 기부금 사용처를 복지·돌봄 등 제한된 분야로 한정하고 있어 지역 특성에 맞는 창의적 사업이나 인프라 구축에는 활용이 어렵다는 지자체들의 불만도 제기돼 왔다. 실제로 상당수 기초 지자체는 기부금을 방역물품, 아동돌봄, 취약계층 지원 등에 일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입법 절차나 시행 일정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며 "논의가 시작되면 세액공제 혜택 확대, 기부 방식 다양화, 기부금 사용처 유연화 등 제도 전반의 손질도 함께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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