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후보를 국민에게서 추천받겠다는 '국민추천제'에 대한 반응은 예상대로 뜨겁다. 하루만에 1만324건의 추천이 접수됐다고 한다. 국민추천제는 기존의 밀실인사나 낙하산인사 등 각종 인사 논란을 피하고, 더 개방적이고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는 취지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인사제도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선의에도 불구하고 국민추천제는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이다. 이 제도의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사람이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잘 해낼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추천제는 성공이 곧 실패가 될 수 있다. 정책에서 투명성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채용 막바지 단계에서는 개인정보보호·정무적 판단의 필요성도 발생한다. 불가피한 밀실도 생기는 셈이다. 인사 실패에 따른 책임 소재 등도 리스크다. 앞서 노무현, 문재인 정부도 유사한 제도를 실시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공표하진 않았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후보자 추천 접수 기간은 10일부터 일주일이다. 단순 계산하면, 총 접수건이 7만을 넘을 수도 있다. 이를 한 명 한 명 제대로 검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걸러지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러나저러나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면, 차라리 새로운 실패가 낫다. 새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대통령실에 'AI수석(AI미래기획수석)'까지 신설하기로 했다. 차제에 AI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이미 많은 기업이 채용 과정에 AI를 도입해 대량의 서류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수만 명의 추천자를 일관된 기준으로 빠르게 1차 선별할 수 있다. 사람의 주관이나 편견을 배제하는 것이다. '내정자를 추려낸 거 아니냐', '특정 인물을 애당초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무력화할 수 있다. 물론 그 1차 선별 기준 자체에 이미 주관이자 편견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할 수 있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형식이 아닌, 실제로 작동하는 국민참여 인사제도를 만들어낸 셈이니까. 그 이전 정부는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또한 AI를 정부 업무에 적극 도입한 선도적인 정부라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AI 공약을 실제로 이행한 정부로서 신뢰도도 높아진다.
실패해도 나쁘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AI 도입이 어떤 의미인지, 현실적으로 어떤 한계와 리스크가 있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의 비용을 정부가 일부 떠안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과 기업들은 오답노트를 무료로 얻는 셈이다. AI 프로젝트가 왜 실패하는지,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사례가 된다. 새정부의 AI에 대한 관심과 진심을 한꺼번에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민추천제에 AI를 접목해 활용해보길, 또 한명의 장삼이사가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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