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원인은 볼트 탈거 입니다"…숙련자 감 대신 믿었더니 오류 줄고 효율 '껑충'[AI 자율제조, 미래를 열다]

대기업-협력사 손잡고 공급망 AI 전환
협력업체 퍼진 제조혁신

신성델타테크, 가전공장 'AI 실증' 작업
생산성 크게 높이고 인력 의존도는 줄여

포스코 협력사 광우, 2단계 공정 고도화
AI 품질관리 도입한 뒤 불만율 절반으로

"불량의 원인은 16번 공정 하네스 홀더 체결 작업자의 과체결로 볼트가 탈거된 것입니다. 최근 일주일간 해당 공정에서 체결 누락 불량이 10건 정도 발생했습니다."


세탁기의 핵심 부품인 '드럼'을 조립하는 공장 안에서 불량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논의하는 대화가 들린다. 결함 원인을 찾는 것부터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결함 이력, 해결 방법까지 설명하는 이 목소리는 놀랍게도 AI다. 작업자는 고글처럼 생긴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한 뒤 AI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르면 3년 뒤 제조 현장에서 보게 될 모습이다.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생활가전 위탁생산(OEM)·개발생산(ODM) 전문기업 신성델타테크 전경. 장희준 기자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생활가전 위탁생산(OEM)·개발생산(ODM) 전문기업 신성델타테크 전경. 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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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찾은 경남 창원시 신성델타테크의 가전부품 공장에선 이 같은 AI 실증작업이 한창이었다. 일부 공정에는 이미 '제조 AI'가 구현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취합하는 단계에 있다. '제조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고, 나아가 작업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행동에 옮기는 거대행동모델(LAM)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LG전자 협력사인 신성델타테크는 AI가 대기업만의 기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제조 공급망 전반에 걸쳐 '데이터 기반 품질 혁신'이 현실로 작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승부 걸었다" 대기업-협력사 손잡고 AI 전환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 드럼 세탁기의 '터브 어셈블리'가 조립을 마친 상태로 정렬돼 있다. 사람이 50가지 부품 유무를 일일이 검사해야 했지만, 이제 인공지능(AI) 기술로 소음 측정까지 처리할 수 있다. 장희준 기자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 드럼 세탁기의 '터브 어셈블리'가 조립을 마친 상태로 정렬돼 있다. 사람이 50가지 부품 유무를 일일이 검사해야 했지만, 이제 인공지능(AI) 기술로 소음 측정까지 처리할 수 있다. 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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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현장에 녹아든 AI는 일을 편리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부족함을 채우는 역할로 나아간다. 이동한 신성델타테크 대표는 "수리 공정은 작업자 중에서도 리더 다음으로 중요한데, 공정은 물론 기능 이슈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된다"며 "제조기업은 AI를 통해 신규 작업자의 빠른 적응과 효율적인 인력 재배치, 비용 감축 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성델타테크의 공정 라인에는 이미 상당 부분 AI 기술이 적용됐다.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드럼 세탁기의 '터브 어셈블리'가 조립을 마친 상태로 정렬돼 있었다. 종래에는 사람이 50가지 부품 유무를 하나씩 검사해야 했지만, LG전자와의 협력으로 오는 7월부턴 AI 기술이 부품 체결 상태를 확인하고 소음 측정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서 부품을 자동 체결하는 로봇이 가동되고 있다. 현장에서 로봇·설비마다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제조 공정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기 위해 취합되고 있다. 장희준 기자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서 부품을 자동 체결하는 로봇이 가동되고 있다. 현장에서 로봇·설비마다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제조 공정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기 위해 취합되고 있다. 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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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수출되는 건조기는 이미 자동화 수준이 85%에 이르렀다. 부품을 투입하고 최종 조립된 단계에서 받아내는 정도만 사람이 담당한다. 생산량은 시간당 600개에 달한다. 공정마다 설치된 로봇·설비에선 LLM·LAM 구축을 위한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취합되고 있다. 현장에서 모이는 데이터는 일 3GB에서 12GB로 크게 늘었다. 정진우 신성델타테크 전무는 "로봇 투입 등으로 생산 과정의 45%를 자동화했고, 제품 정보관리나 생산 스케줄링 등 업무의 30%를 정보화했다"며 "생산성 향상은 물론 인력 의존도를 16%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빠르게 부상하면서 우리 제조 기업들은 손익구조 악화에 직면했다. '제조 역량이 곧 기업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서 생산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다. 신성델타테크는 발 빠른 인공지능 전환(AX)을 제조 위기의 돌파구로 보고 있다.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서 로봇과 작업자가 함께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로봇·설비마다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제조 공정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기 위해 취합되고 있다. 장희준 기자

신성델타테크의 세탁기 생산라인에서 로봇과 작업자가 함께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로봇·설비마다 발생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제조 공정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기 위해 취합되고 있다. 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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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전무는 "구성원들에게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마스터 시스템에 엔터 한 번 치면 전날 생산 리포트가 쫙 뜨게 하는 일상을 그려보자'는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있다"며 "지난주 혹은 지난달 상황을 알기 위해 사람이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고 전화하는 일을 계속할 순 없다. 기술적으로 각색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현실적으로 투자 대비 효과(ROI)가 2년 안에 나와야 신규 투자에 나설 수 있는데, AI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어려운 공정들은 투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4~5년 정도 소요된다"며 "정부 지원은 물론, 기업 간 상생을 통해 공급망 전체에 AI 기술이 확산해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숙련자 感보다 데이터 신뢰해야 하는 시대"
경북 포항의 철강산업단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소기업 광우 공장의 전경. 광우 제공

경북 포항의 철강산업단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소기업 광우 공장의 전경. 광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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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사 압연설비에 들어가는 필수 특수윤활제 '합성 에스테르'를 만드는 중소기업 광우의 생산 공장. 경북 포항 철강산업단지 내 위치한 이곳에는 유기용제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 대신 조용한 기계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국내 최대 철강기업 포스코의 협력사인 광우는 사람 대신 AI가 원료 투입량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에르테르 공정 책임자는 기자에게 합성 공정동을 안내하며 "기계에 투입되는 원료 양이 0.1% 이내 오차 범위로 자동 제어된다"며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밸브를 조절해야 해서 피로도가 높았고, 실수도 잦았다"고 설명했다.


광우의 합성 공정 라인. 대형 배합기와 정제기는 온도, 유량, 압력 등 주요 변수들이 자동 제어된다. 조성필 기자

광우의 합성 공정 라인. 대형 배합기와 정제기는 온도, 유량, 압력 등 주요 변수들이 자동 제어된다. 조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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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는 2015년부터 공정 자동화와 AI 적용을 시작했다. 현재는 온도·압력·회수량 등 주요 공정 변수까지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2단계 고도화 작업이 한창이다. 모든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수집돼 디지털 대시보드에 집약되고, 이를 기반으로 설비 이상 징후도 조기 탐지한다.


그중 핵심 공정은 '배합 품질 관리'다. 원료 혼합 비율이나 배합 온도 등 주요 수치가 기준치를 벗어나면 AI 기반 시스템이 즉시 경고를 띄운다. 기준값은 포스코의 요구 품질 조건을 바탕으로 과거 생산 이력을 분석해 설정됐다. 박태준 광우 대표는 "예전에는 고객사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야 개선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내부에서 먼저 편차를 찾아낸다"고 했다.


BT-12 공정 전용 운전 패널 화면. 설비 운영 정보와 경고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시각화된다. 조성필 기자

BT-12 공정 전용 운전 패널 화면. 설비 운영 정보와 경고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시각화된다. 조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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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합을 마친 원액은 정제기로 보내져 불순물, 색상, 유분리 여부 등을 다시 한번 점검한다. 오차 발생 시 시스템이 자동으로 알림을 보낸다. 마지막 포장 단계에선 수작업과 자동 점검이 병행된다. 광우는 수십 가지 제품을 소량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구조다. 그 때문에 반복 자동화보다 개별 로트 단위의 품질 관리가 중요하다. 박 대표는 "특수 윤활유는 품질 민감도가 높다"면서 "이제는 숙련자의 감(感)보다 데이터를 신뢰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AI 품질관리 도입 이후 불만 발생률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작업자 숙련도에 따른 품질 편차도 현저히 낮아졌다. 광우의 공장은 로봇이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화 풍경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수집된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다. 품질, 설비, 이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관리하는 정보화 체계가 중심이다. 현장 직원은 "지금은 AI나 머신러닝을 위한 '토목공사' 단계"라며 "기반 데이터가 쌓여야 기계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BT-12 배합 공정을 설명 중인 광우 생산팀 관계자. 각 탱크는 제품별 배합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조성필 기자

BT-12 배합 공정을 설명 중인 광우 생산팀 관계자. 각 탱크는 제품별 배합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조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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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창원=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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