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5시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고물상.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고물상 주변에는 폐지, 고철 등이 가득 찬 수레가 늘어져 있었다. 보행자도, 차량도 거의 없는 이른 시간 골목길 끝에서 김미경씨(68)가 폐지를 가득 담은 수레를 끌고 왔다. 김씨는 "고물상이 오전 5시 30분 문을 열어 근처에 수레를 두고 계속해서 폐지를 줍는다"고 말한 뒤 재차 빈 수레를 챙겨 거리로 나섰다.
김씨는 신당동, 황학동 일대 빌라, 오피스텔 등의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아파트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있는 경우가 많아 골목 곳곳을 다니며 폐지, 고철 등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가득 쌓은 폐지를 고물상에 가져가 받은 돈은 1000원 남짓. 이 일대에서 박스 등 폐지는 1kg당 40원이다. 신문이나 책등 박스보다 무거운 종이나 캔은 1kg당 80원이지만 이날 따라 거리에는 빈 박스만 눈에 띄었다.
폐지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역마다 폐지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김씨 같은 이들은 집 근처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 더 비싸게 사주는 곳으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한국환경공단이 집계한 올해 전국 평균 폐지 가격은 82원 수준으로 2022년(142원)보다 크게 내려갔다. 김씨는 "폐지 가격은 갈수록 떨어져 돈벌이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더 비싸게 폐지를 사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자가용이 없고 걸어 다니는 탓에 집 근처에서 벗어나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김씨가 택한 것은 남들과 반대로 사는 것이다. 김씨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6시면 집을 나서 폐지 등을 줍기 시작해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귀가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 한 번 귀가한 뒤에만 끼니를 챙길 수 있다. 주간에는 김씨 말고도 폐지 수집 노인이 많은 탓에 온종일 거리를 다녀도 공치기 일쑤다. 김씨는 "해가 뜨고 나서 다니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다른 사람들이 폐지를 가져간다"며 "그러니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심야에는 사고 위험도 덜하다. 폐지를 채운 수레를 끌다 보면 시야가 가려져 보행자와 부딪히거나 지나가는 차량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김씨는 "길이 울퉁불퉁하고 수레 위에 쌓인 폐지로 앞이 잘 안 보이다 보니 보행자와 부딪히거나 차량이 오가는 걸 못 볼 때가 많다"며 "그나마 야간에는 사람도, 차량도 없어 비교적 안전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출근 시간대 황학동의 한 빌라에서 폐지를 가득 채운 수레를 끌고 500m 거리의 고물상으로 가봤더니 시민들과 부딪힐 뻔한 일이 많았다. 높이 쌓인 폐지로 앞은 잘 안 보이고, 폐지 면적이 넓어 좌우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 이동하는 내내 보도블록에 수레가 걸리는 일도 빈번했다. 이 험난한 여정의 대가는 단돈 500원 수준이었다.
이날 김씨는 평소보다 이른 오전 10시 반 고물상에서 정산받았다. 전날에는 정오가 아닌 오후 2시까지 일한 탓이다. 16시간가량 거리를 돌아다닌 김씨의 하루 값어치는 2만4400원이었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파악된 폐지 수집 노인은 총 1만4594명이다. 다만 노인마다 이동 거리·동선·시간이 달라 매년 현황 파악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기초생활수급비, 기초연금 등을 모두 합쳐 76만원으로, 노인 월평균 소득 180만원(2023년 기준)의 절반도 안 된다. 이들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거나 기초연금 수령자다.
그러나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인천시 등 지자체가 이들에게 공공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1만4594명 중 32.3%(4787명)만 그 혜택을 보고 있다. 공공일자리 사업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근로 시간 제약 등을 이유로 공공일자리 대신 폐지 줍기를 택하는 것이다. 법적인 지원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폐지 수집 노인의 일자리 사업, 보호장비 지원 등은 지자체 조례를 근거로 진행되지만, 전국 229곳 지자체 중 관련 지원 조례를 마련한 곳은 99곳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가 있는 만큼 지자체 조례뿐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일자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 만큼 정책 홍보도 늘리고 많은 이들이 공공일자리에 연계될 수 있도록 예산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노인복지예산 27조원 중 80%가 국비고 나머지가 지자체 몫인데 기초연금으로 총 22조원이 잡혀 있다"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작은 지자체의 경우 기초연금만 지원하면 예산이 부족해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현실적으로 폐지 수집 노인만 놓고 이들 현황일 주기적으로 파악해서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이들 대다수가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인 빈곤 문제 차원에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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