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 속, 등굣길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9일 오전 8시30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1~2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벨소리를 꺼서 못 받았다고요." 아이는 잔소리를 들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전화를 껐다. 1분이 지나자 벨소리가 울려 아이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이제 학교 다 왔어요." 아이의 등굣길이 불안한지, 부모는 분 단위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저학년, 고학년을 가리지 않고 학교 앞 대부분 학생들은 어른들의 손을 잡고 등교 중이었다. 이 학교와 걸어서 8분 거리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집이 있다.
조두순은 지난해 10월23일 기존 거주지였던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2km 떨어진 한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이사하는 순간부터 주변 지역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거주지에서 약 300m 거리에 어린이집만 2개, 600m 거리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이날 오후가 되자 조두순 거주지 인근에는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물론 조두순은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다. 그의 외출 제한 시간은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대인 오전 7~9시 및 오후 3~6시, 야간 시간대인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다. 안산시 소속 청원경찰 7명은 계속해서 그를 감시했다. 하지만 조두순은 올해 3월30일, 5월11일 오후 3시~6시 사이에 거주지를 벗어나는 등 무단 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2023년 12월에도 무단 외출을 한 혐의로 징역 3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현재 조두순은 자신의 거주지에 없다. 안산보호관찰소는 무단 외출을 반복하는 조두순에 대한 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원지법 안산지원에 감정유치를 신청했다. 감정유치란 피의자 정신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의사 및 전문가의 감정을 받는 제도다. 지난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감정유치장을 발부해 조두순은 한 달 동안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게 됐다. 안산보호관찰소는 조두순의 정신감정 결과를 토대로 형사 처분 방향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조두순이 잠시 떠난 거주지 주변에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주민들은 조두순이 감정유치를 가면서 경찰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만 과거 조두순을 감시했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그의 거주지 앞에 위치한 방범용 카메라는 계속해서 다가구주택 현관을 비췄다. 이같은 방범용 카메라는 그의 거주지 앞뿐만 아니라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공원에도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은 조두순이 어디 사는지, 경찰이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지, 현재 정신감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두순 관련 뉴스는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오후 1시30분께 학교를 마친 두 아이는 가방을 메고 조두순 거주지 앞 공원에 왔다. 아이들은 서로 스마트폰으로 게임 아이템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한 아이의 엄마가 등장했다. "집에 빵하고 우유 뒀으니까 빨리 올라가라!" 엄마는 바빴는지 아이에게 당부만 하고 뛰어서 어디론가 갔다. 아이는 대충 알겠다고 답하고 다시 스마트폰에 빠져들었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직 안 들어갔어? 가방 챙겨서 집에 올라가!"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가방을 등에 둘러메면서 엄마에게 답했다. "엄마 나 이제 가방 챙겼고 올라가서 빵 먹으려고." 아이들은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주민들은 불안함에 신경이 곤두서있기도 했다.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되지만, 조두순이 다시 이 지역으로 오는 게 두려워 결국 국가 탓을 할 수밖에 없네요" 와동 주민인 이모씨(78·여)는 조두순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한 주민은 조두순에 대해 묻자 10분 동안 쉬지 않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조두순이 감옥에서 풀려난 후 마을에는 항상 긴장감이 맴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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