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SK실트론 매각에 구미의 허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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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키워놨더니…뒤통수 맞은 기분입니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인 SK실트론의 매각 소식에 경북 구미시 관계자는 "지역과 함께 성장해온 기업인데 아쉽다"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기업에 투자하겠나" 하고 당혹감을 내비쳤다. 신뢰받는 대기업 계열사라는 점에서 행정·재정적 지원은 물론 산업 인프라를 꾸준히 제공해온 지방자치단체로선 갑작스러운 기업 매각 방침이 허탈하게 다가온 것이다.

구미시는 그간 SK실트론이 성장하는 데 든든한 울타리가 돼줬다. 2022년부터 총 2조원 넘는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고 지난해엔 하수도 원인자부담금 중 일부인 100억원을 환급해 주기도 했다. 인근 고교, 대학과 산학협력 확대를 위한 조례 개정 등 기업 활동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 행정 역량을 집중해왔다.


노조와 지자체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애써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회사 직원들과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시민·노동계 연대를 통한 의사 전달에 불과했다. 노동자 보상안이나 지역에 대한 책임 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채 매각 작업은 진행 중이다. 구미 공장이 삶의 터전인 이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각 절차를 한없이 기다리는 건 매일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SK실트론 측은 적어도 매수자가 선정된 후에야 후속 조치를 마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매각 절차 초기 단계인 만큼 고용 유지 계약이나 사후 보상안 등에 대해 공지하기엔 이른 시점"이라면서도 "과거 유사 매각 사례에서도 고용 불안이 해소된 바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구미시와 체결한 투자 계획 대부분을 이미 이행한 상태이며 매각이 이뤄지더라도 잔여 투자엔 차질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매각 절차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업이 지역사회와 맺어온 신뢰를 외면한 채 투자만 회수하는 듯한 모습은 지방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미 산단은 지난 50여년간 국내 산업화의 획을 그은 대표적인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꼽혔다. 하지만 불황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최근 들어 일부 공장 폐업과 가동 중단 등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태다. '기업이 쉽게 떠나는 도시'로 낙인찍히는 건 구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에서도 불행한 일이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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