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 거액의 배상금 판결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미국은 왜 '소송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을까.
미국에서는 계약·소비자 분쟁 등 일상의 많은 문제를 소송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7일 미 연방법원의 '연방 사법 사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약 35만건의 소송이 연방법원에 제기됐으며, 이 중 80%인 약 28만건이 민사소송이었다. 평균적으로 민사소송의 약 5%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됐으며, 배상액이 1억달러(약 1380억원) 이상에 달하는 초대형 징벌적 손해배상은 2020년~2023년에만 89건 이상 있었다. 알렉스 베레조우 미국 과학보건협회(ACSH) 선임연구원은 2019년 ACSH 칼럼에서 미국을 '소송 중심 사회(Litigious society) 라고 표현하며 "과도한 소송 제기가 사회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송이 많다 보니 인구 대비 변호사 수도 많다. 인구정보 분석업체 세계인구리뷰(WPR)는 '2025년 국가별 1인당 변호사 수' 통계 보고서에서 미국은 인구 10만명당 변호사 402명으로 이스라엘·도미니카공화국·브라질·이탈리아에 이은 5위라고 밝혔다. ▲영국(226명) ▲독일(191명) ▲한국(116명) 등에 비해 훨씬 많다.
미국은 가해자의 고의·악의적 또는 중대한 과실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단순히 피해를 보상하는 것을 넘어 '징벌적 의미'의 금전적 배상을 부과하기 때문에 거액의 배상금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주로 집단 소송을 통해 기업의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제기하고, 권리를 보장받는다.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이른바 '맥도날드 커피 사건'이다. 1994년 한 70대 여성 고객이 맥도날드에서 뜨거운 커피를 샀다가 화상을 입자 치료비 및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이 고객은 커피 탓에 하반신에 3도 화상을 입었고, 대퇴부·엉덩이 조직은 심하게 손상돼 피부 이식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고객에게 치료비 및 손해배상금으로 약 290만 달러(약 40억원)의 배상 판결을 했다. 뜨거운 커피를 건네주며 위험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고, 맥도날드가 수년간 수백건의 커피 화상 민원을 접수하고도 조처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한 판단이었다. 다만 과도한 배상이라는 지적에 따라 항소 전 배상금은 양측 합의로 조정했으며, 합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모든 커피전문점의 커피 컵 혹은 종이 손잡이에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삽입되는 계기가 된다.
광고와 실물이 다를 시 '과장 광고'로 소송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2015년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는 샌드위치의 길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법원에 피소됐다. 써브웨이의 샌드위치 길이는 12인치인데, 한 소비자가 실제로 샌드위치 길이를 줄자로 재봤더니 빵 길이가 2.5㎝ 짧았다. 써브웨이 측은 빵 반죽 및 제조 과정에서 빵의 부풀기와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써브웨이가 50여만달러의 재판비용 및 보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최근 글로벌 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도 과장 광고를 했다는 혐의로 피소됐다.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 19인은 버거킹이 경쟁사에 비해 버거 크기가 크다는 점을 내세워 광고해왔지만, 실제 버거는 광고에 나온 것보다 작다고 주장했다. 버거킹 측은 "고객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보기 좋게 버거를 연출했을 뿐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광고 사진의 핵심은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플로리다 연방지방법원은 지난달 "단순한 과장 표현을 넘어선 기만 행위일 수 있다"며 버거킹의 기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추후 본안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폐암 등 담배로 인해 생긴 질병에 대한 책임을 담배회사가 져야 한다는 판결도 있다. 1994년 46개 미 주(洲) 정부는 담배회사들이 연간 43만명에 달하는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품을 제조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필립모리스 등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피고인 담배회사 측은 담배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고 맞섰다. 당시 담배의 중독성과 위해성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담배회사들은 주 정부들에 25년에 걸쳐 2060억달러(약 283조원)를 배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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