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파면으로 실시되는 이번 '조기 대선'은 그 어떤 대선보다 후보 간 갈등이 뚜렷하다. 정책을 갖고 입씨름해야 할 후보자 TV 토론이 상호 비방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가운데 하루가 멀다 하고 선거용 벽보나 현수막이 훼손됐다는 뉴스도 쏟아지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주를 기준으로 대통령 선거용 현수막 및 벽보 훼손 혐의로 690명을 단속해 이 중 12명을 검찰에 송치(구속 1명)하고 673명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20대 대통령 선거와 비교할 때 무려 2배 넘게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실제 전국에서 선거 벽보를 훼손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충북 청주에서는 정치가 싫다는 이유로 대통령 선거 벽보를 훼손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어려운 형편이 정치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아 홧김에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를 반대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붙인 인물을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해당 인물은 지난 23일에서 24일 사이 제주시 내 한 버스정류장 등 6곳에 특정 후보자를 반대하는 내용의 인쇄물 9매를 붙인 혐의를 받는다.
각 진영 간의 대립이 점점 더 극단적이 되고, 그 결과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움직임이 선거 홍보물 훼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거 공정성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
선거 홍보물 훼손은 '재물 손괴' 수준의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선거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무거운 범죄로 볼 수 있다. 선거법은 선거 홍보물을 훼손한 사람에게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 홍보물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이나 범죄여서는 결코 안 된다. 선거는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도 온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선거공보물 훼손은 공정한 선거의 과정을 해치는 일이다. 모두 자제해야 한다. 선거 사범을 단속하는 것은 선관위와 수사기관의 몫이다. 그런데 선거 과정을 지켜내는 것은 건강한 시민의 역할이다. 정치 대립을 넘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거의 본질은 유권자들이 각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 후보자들의 선거 캠페인도 상대방 공격이나 비방이 아닌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 마련이지만 '정책 중심의 선거'와 '비난 공격 선거'는 선거 이후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다.
정치인들이 할 몫은 정치인들에게 넘기고, 시민들이 할 몫은 시민들이 해내야 한다. 그 첫걸음을 선거 벽보와 현수막 훼손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어쩌면 선거 홍보물 훼손을 삼가고 차단하는 것처럼 작은 실천부터 차곡차곡 해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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